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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유아세례를 받고나서 뭣모르고 어머니 손잡고 성당에 다녔습니다.
부모님 옆에서 꾸벅구벅 졸기도 하고.. 졸다가 깨면 어머니는 나가서 무언가를 드시는 거에요. 그게 ‘성체’였습니다.
조금만 달라고 해도 어머니는 절대 안된다며 주지 않으셨어요.
‘그게 뭐에요?’하고 여쭈어보면 ‘예수님의 몸이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예수님의 몸...?'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야 저도 모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제가 그 학년이 되었을 땐 늦은 새벽까지 40개나 되는 기도문을 외우면서
3개월을 매일같이 새벽미사를 봉헌하고서야 첫영성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바로 복사단 입단을 하였습니다.
당시 복사단 생활은 규율이 엄격했어요. 어른이 없이도 선후배간의 위계질서가 뚜렷했습니다.
그래도 방학이 되면 매일 새벽미사를 봉헌하고 형 동생들과 함께 공을 차는 시간이 참 즐거웠습니다.
언젠가 학교 선생님께서 물어보시는거에요. ‘윤흡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그 질문에 문득 떠오른 것이 ‘성당에서 살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신부님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뭣도 모르는 어린 아이는 신부님이 되기를 꿈꾸었고 그 어린 아이는 어느새 성무를 집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끔씩 교우분들께서 면담을 신청하십니다.
‘신앙생활에 회의가 옵니다.’ ‘하느님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세례는 받았는데 믿음이 부족합니다.’
‘성당에 나오기 싫어요. 죄책감이 생길까봐 나오는데 이게 냉담인지 열심한 신앙생활인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이죠?’ ‘저는 죄가 없는데 왜 고해성사를 해야합니까?’
사제가 되겠다고 꿈꾸었던 그 어린 아이는 10년을 신학교에 살면서 이 질문들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가장 본질적인 물음이 있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내가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신앙이 무엇일까? 나는 믿음이 있을까?’
이런 물음을 던지면서도 함께 드는 생각이 있었으니...
‘그래도 분명 무언가 있다’는 반신반의한, 불분명한 확신이었습니다.
오늘 1독서는 ‘아모스의 부르심’이야기입니다. 아모스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었어요.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 나무를 가꾸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어요. 그리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아모 7,14-15참조)
아주 평범한 그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부르십니다. 당신의 도구로 부르시는 거에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평범한 삶’이란 없죠.
모든 삶은 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고 사건이 있고 기쁨과 아픔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역사하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합니다.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에페 1,4-5)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들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는 우리들의 바램과 의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이전에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를 태초부터 점지해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를 죄인 취급하려는 것도, 우리를 귀찮게 하려는 것도 아니라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죠.
하느님께서 우리를 점지하시고 우리들의 삶을 역사하신다는 말씀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를 향해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어떻게 느낄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 한 초등부 친구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제게 달려와 말했습니다.
“신부님! 저번에 주신 해바라기있잖아요? 해바라기가 폈어요! 저는 물만 줬는데 햇님이 키워주신 거 같아요.”
문득... 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루카 12,7)
우리가 잘 아는 생택쥐베리의 소설, '어린왕자'의 명언이 있죠.
‘내 비밀은 이런거야.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발벗고 뛰쳐 다가가는 하느님의 사랑 방식’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 아닐까 싶어요.
주님께서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렇게 오늘도 우리 삶을 역사하시면서
매순간 발벗고 다가오는 그런 사랑으로 우리 곁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해바라기도 키우셨고, 제 삶을 그렇게 역사해 오셨으며,
분명 교우분들의 시간과 공간을 모두 이끌고 계십니다. 발벗고 나서서 말입니다!
하느님은 결코 멀리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발견하고자 한다면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하느님을 보려는 영적인 시선의 근육을 키워보신다면,
우리 삶은 하느님으로 가득차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면 우리 삶은 축제가 됩니다!
신학생 때 대성당에 홀로 앉아 십자가를 보고서 예수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예수님, 진짜 하느님이 계십니까? 어디 계십니까?"
"눈에 보이지 않아서 너와 항상 함께 할 수 있는거야. 내가 눈에 보인다면 모든 순간을 함께 할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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