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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9,1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태오’를 부르십니다. 마태오는 ‘세리’였어요.
예수님 시대에 일부 직업 종사자들은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미움을 받고 심한 경멸 뿐 아니라 법의 보호로부터도 제외되었던 사람들이 바로 ‘세리’였습니다.
세금 징수원과 세리는 또 구분이 됩니다.
세금 징수원은 인두세와 토지세를 관장하는 정부 관리입니다. 정식 공무원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세리는 조금 다릅니다.
세리는 일정 기간 어떤 특정 지역의 통행세를 받을 권리를 지니게 된 세관장에게 소속된 부하 직원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로마 제국의 하수인, 대리인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수입의 대부분을 제국에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통행세를 징수할 때 없는 조건도 붙여서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채울 돈을 걷었던 것입니다.
이런 부패와 부조리 때문에 세리들은 악질적 집단, 동족의 피땀을 착취하는 사람들로 간주되었습니다.
철저하게 배척당하고 추방되는 처지까지 놓이게 되는 것이죠.
당시 세리의 회개 조건은 매우 엄격했다고 전해집니다.
직업을 포기해야 할 뿐 아니라 남들로부터 부당하게 착취한 몫의 1/5를 돌려줘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세리 마태오는 오늘 예수님의 부르심에 회개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마태 9,9)
하느님께서 주도하시는 구원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정녕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태도가 무엇인지 우리는 마태오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9,13) '마태오의 회개'와 더불어 왜 이 말씀이 등장했을까요?
1. 문득 가톨릭 성가 213번이 떠오릅니다.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 너에게 원한 품은 형제 생각나면.
어서가 그 형제와 화해를 하고, 돌아와 그 예물 바쳐 드려라.‘
2. ‘최후의 심판’이라는 소제목을 가진 마태오 복음 25장 31절 이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주었다.
...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35-40)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9,13)
우리가 성당에 나와 매일 미사를 봉헌하며 묵주알을 굴리고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봉헌하는 것.
물론 아주 중요한 우리들의 신앙생활이지만 ‘실천없는 신앙’은 허무요, 신앙엔 실천이 따라야합니다!
자비의 얼굴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1. ‘네 형제 자매와 먼저 화해하여라.’
2. ‘가난한 이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이 두 가르침을 요악하자면 바로 오늘의 이 말씀이죠.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9,13)
자비의 얼굴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은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청하는 오늘 하루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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