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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는 사도 성 토마스를 기억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이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멋진 고백을 남겼던 토마스는
다음과 같은 신앙의 통로를 지나쳤습니다.
‘만남-불신-의심-믿음’
오늘은 철학자이자 소설가, 시인, 화가로서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한 레바논의 대표 작가,
위대한 저서 ‘예언자’를 남긴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1883-1931)의 글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칼릴 지브란은
‘사람의 아들, 예수’Jesus, The son of Man(칼릴 지브란 지음, 박영만 옮김, 프리윌출판사, 2016)라는
저서 안에서 ‘이성적인 제자 토마스(Rational disciples), 의심에 관하여(On the Forefathers Of His
Doubts)’라는 글을 통해 토마스가 하느님께 나아갔던 통로의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법률가였던 저의 할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진리가 우리들 앞에 명백히 드러났을 때에만 그 진리를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를 부르셨을 때, 저는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말씀은 저의 의지보다 훨씬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저는 할아버지의 가르침도 따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면 사람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그분에게 쏠렸지만,
저는 항상 냉정하게 판단했습니다. 물론 저도 그분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합니다.
3년 전, 그분이 우리 곁을 떠나셨을 때 이리저리 흩어졌던 제자들은
지금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고 온 나라에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의심 많은 토마’라고 불렸었지요.
그것은 언제나 저의 할아버지의 가르침이 제게 드리워져 있어서 저는 진리가 명백히 드러나기 전에는
어떤 것이든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저는 상처가 나면 상처에 직접 손을 대보고 피가 손에 묻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아픔을 인정하는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저는 지금은 마음으로 사랑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의심을 품는 사람은,
주인이 흔들어 깨울 때까지 졸면서 노를 저어가는
그러면서도 자유를 꿈꾸는 노예선의 노예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마음속으로는 늘 진리를 꿈꾸었지만,
한편으로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에만 묶여 있는 바로 그런 노예였습니다.
저는 진리이신 나자렛 예수가 나타났을 때에도
두 눈을 꼭 감고 사슬로 묶여 있는 제 손목을 쳐다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이 곧 진리임을 믿음으로써 모든 인생의 사슬로부터 풀려나 있습니다.
의심이란, 불행하게 버려진 아이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과 같습니다.
의심은 비록 아이를 낳은 어머니가 아이를 찾아와 안으려 해도
그 아이는 두려움과 경계심으로 그 손길을 뿌리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의심이란 또, 그것이 곧 믿음의 쌍둥이 형제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외로운 고통입니다.
의심은 그 상처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는 결코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저는 예수께서 저에게 확신을 심어주실 때까지 그분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이 부활하셨을 때,
제 손으로 직접 그분의 손과 발에 난 못자국의 상처를 만져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저는 믿기 시작했어요.
그러고 나서야 저는 저의 과거와 조상님들의 신념으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자유를 만끽하게 되었습니다.
제 의심은 이제 제 안에서 죽어 묻혔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향한 제 믿음은 생명력을 얻어,
길이요 소망이신 예수의 부활을 믿으며 저의 부활 또한 믿습니다.
어제 아침에 몇몇 믿음의 형제들이 제게 와서 말하기를,
제가 페르시아인들과 힌두인들에게 가서 그분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한편으론 두렵지만 그분과 그분의 말씀을 믿기에 기꺼이 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저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그분의 부활과 그분의 말씀을 증거 할 것입니다.”
만남과 불신, 의심과 믿음의 단계로 나아가는 칼릴 지브란으로부터 소개된 ‘이성적인 제자 토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1.믿음의 단계로 나아가기까지는 많은 역경이 있다는 점!
예수님을 알게 된 후 바로 완전한 믿음이 정착되는 것이 아닙니다.
의심과 불신의 경험이 선행되고 그제서야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따라서 우리가 의심과 불신의 상태에 놓여있다고 해도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2.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그리스도 신앙
토마는 어렸을 적 법률가 할아버지의 영향을 통해 ‘드러나는 것만 진리로 믿는다’는 교육을 받았어요.
우리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렸을 적 기억만이 아니더라도, 제3자를 통해 확립된 가치관으로 믿음의 길이 차단된 경험 말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결국 신앙은 ‘나와 하느님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제3자가 아니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는 토마의 고백처럼
나를 향한 그분의 사랑과 그분을 향한 나의 충절이 만나 신앙의 불꽃이 번진다는 것이죠!
의심과 불신, 확신과 믿음. 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과제입니다.
‘이미 벌써, 아직 아니’의 종말론적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희망을 주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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