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0617 나해 연중 제11주일
2018-06-16 14:52:53
박윤흡 조회수 1297

 

 

  오늘 복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라.’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마태 17,20)

겨자씨 비유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내용은 요한복음을 제외한 공관복음에도 등장하는 텍스트로

마태오 복음 13,31-32절, 루카 복음 13장 18-19절에 같은 내용이 등장합니다.

 

  마르코 복음은 4장 1절부터 ‘비유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자,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많은 사람들이 모인 호숫가에서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가 되며,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것을 말씀하십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마르 4,1-9),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마르 4,10-12),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설명’(마르 4,13-20)도 하시고 ‘등불의 비유’(마르 4,21-25)를 말씀하셨으며, 

이제 드디어 오늘 복음 텍스트인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마르 4,26-29)와 ‘겨자씨의 비유’(마르 4,30-32)를 설파하십니다.

이 비유들은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믿으라’는

믿음에 대한 절절한 촉구가 담겨진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말씀을 다 마치신 다음에 예수님과 제자들의 행보입니다.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하고 말씀하셨다.”(마르 4,35)

이제 일명 ‘풍랑주의보 사건’이 나타납니다. 복음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마르 4,37-38)

답답하다 못해 화가 난 제자들은 조급한 마음에 예수님께 이렇게 따집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 4,38)

그러자 예수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죠.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40)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앞서 ‘믿음’에 대하여 계속 이야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부족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사도 바오로께서는 2독서에서 ‘믿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 몸 안에 사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언제나 확신에 차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2코린 5,6-7)

 

  우리는 어떻습니까? 제자들과 달리 믿음이 강한 우리일까요?

우리 또한 어쩌면 제자들처럼 ‘믿음이 약한’ 존재일지 모르겠습니다.

‘이 몸 안에 사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산다.’는 바오로 사도의 이 표현은

세상적인 것에 매여 있을 때 하느님으로부터 떠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신앙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대한 의탁의 믿음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믿어야 한다는 것인가?’

 

  그 답을 오늘 1독서의 말씀은 알려줍니다.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며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고 시든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이가

나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에제 17,24)

어떤 나무이든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에 따라 높이고 낮추고 시들게 하며 무성하게 할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믿음’이라는 것은 ‘온전히 하느님께 주도권을 내어드리는 의탁의 행위’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나약한 존재인 우리는 하느님께 그렇게 내어드릴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베네딕도 교황님께서는 이 세상에 믿는 자는 두 부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심하면서 믿는 자’와 ‘의심하면서 믿지 않는 자’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놓인 궁극의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께 내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내어드릴 때,

주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분명 우리를 영원한 생명이 깃든 하느님 나라 티켓을 쥐어주실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오늘 강론은 마르코 복음 9장 24절에 등장하는 믿음을 청하는 한 사람의 외침으로 갈무리 하고자 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마르 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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