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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독서는 ‘인간의 죄와 벌’이라는 소주제를 가진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에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 2,16-17)
그리고 뒤이어 오늘 1독서의 말씀이 나옵니다. 독서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하느님께서 열매를 따먹은 그 사람을 부르십니다.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
이 질문은 심오하게 느껴집니다.
‘나와 가깝게 친교를 맺고 있던 너의 그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 내 안에서 행복을 누리던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나의 말에 순종하며 내 뜻에 따르던 너는 어디에 있느냐?
내가 먹지 말라고 당부했던 그 열매를 따먹고서 지금 너는 어디에 있느냐...?’
죄짓고 악의 유혹에 넘어간 당신의 자녀를 보고서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애통하셨을까요?
후에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땅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그들이 이제 ‘생명나무’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하느님께서는 불칼을 세워 에덴동산을 지키시죠.
하지만 하느님 역사의 드라마는 결코 ‘인간을 추방한 채’ 막을 내리지 않습니다!(중요!)
로마서 5장 12-21절은 ‘아담과 그리스도’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어요. 19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로마 5,19)
자, 여기에서 ‘많은 이를 의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준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서 이렇게 ‘생명나무에 못 박혀 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시죠.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왜 아담과 그리스도는 철저하게 구분되는 것인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저는 그 답을 오늘 2독서의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2코린 4,18)
첫 아담이 눈에 보이는 선악과에 눈이멀어 하느님과의 계약을 잊었다면,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영원하신 하느님께 의탁하면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셨기에 승리의 월계관을 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 말씀 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5)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온 생애를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삶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오늘의 요점을 짚어보겠습니다.
‘연중 제10주일을 맞아 오늘 교회가 우리에게 선포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일상의 삶 안에서 창세기의 아담처럼 끊임없이 죄에 넘어지고 하느님을 부정할 때도 있으며 원망할 때도 많죠.
또 때때로 믿음이 부족하여 점, 타로, 사주 등을 통해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취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마치도 큰 표징을 바라는 것이겠지요. 이 모두 우리의 나약함을 반증하는 모습들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럴 때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양심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죠.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
우리들의 구세주 예수님께서는 분명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그렇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몫은
첫째,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 안에 숨겨진 “믿음의 영”(2코린 4,13)을 발견하는 것,
둘째로 보이지 않는 영원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의탁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마르 3,35)이 되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소명이 아닐까요?
생명나무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온 희망을 두고서,
부활을 선물로 주실 주님께 나를 내어드리는 한 주간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 강론은 코린토 1서 15장 19-22절의 말씀으로 갈무리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1코린 15,19-22)
하느님 역사의 드라마는 우리가 구원의 문에 이를 때까지 결코 끝나지 않을 이야기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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