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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멀리서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무엇이 달렸을까 하여 가까이 가 보셨지만,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마르 11,13)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께서 ‘시장하셨기 때문에’ 그 무화과 나무에 다가가셨다는 점과
‘무화과 철이 아니다’라는 점이에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 무화과 나무를 보고서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 영원히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마르 11,14)
의아하게 다가옵니다. ‘시장하신 나머지 화가 나신걸까? 철이 아닌데 왜 굳이..?’
그런데 다음 말씀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다.”(마르 11,14)
복음사가는 무화과 나무를 향해 저주를 붓고 계신 예수님의 그 말씀을 제자들도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오늘 복음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날이 저물자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 밖으로 나갔다.
이른 아침에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다.”(마르 11,19-20)
그리고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씀드리죠.
“스승님, 보십시오. 스승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마르 11,21)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믿어라!”(마르 11,22)
문득 이런 묵상을 하게 됩니다.
‘잎만 무성한 채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는 믿음이 없는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겉만 번지르르하고 하느님과의 친밀감이 결여된 내실없는 신앙생활을 예수님께서는 한탄하시는 것이 아닐까?
제자들도 그 저주의 말씀을 들었다 함은,
어쩌면 예수님의 참 제자됨이 어떤 것인지 복음사가가 전해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마치도 나의 신앙생활처럼...’
이어서 예수님꼐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르 11,24)
정리해 보자면, 예수님꼐서는 오늘
‘우리를 분명하게 선으로 이끌어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요청하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요?
무화과나무가 철이 아닐지라도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에
결국 모든 열매는 하느님께서 맺으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선포하시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성 유스티노’는 참된 진리를 쫓는 신앙의 설교자로 활동했던 분이십니다.
일생 하느님을 증거하는 삶 안에서 수없이 많은 고뇌가 성인의 삶에 침투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성인은 결국 순교로서 완전한 하느님 증인으로 우뚝서게 됩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그건,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선으로 이끌어주실 하느님께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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