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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성모성월을 마치며 어머니께 우리의 사랑을 봉헌하고 있습니다.
비록 어머니의 사랑에 비해 우리의 정성은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자녀의 작은 선물에도 한없이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처럼,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정성에도 한없이 기뻐하시며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 가득한 눈길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고 계십니다.
그럼 이제 이 좋으신 어머니 품 안에서,
이처럼 우리가 성모님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한 번 돌아보고 싶습니다.
교회는 성모님을 모든 신앙인의 모범으로 부릅니다.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인이 닮아야 할 모습이라는 것이죠.
그럼 성모님이 보여주신 모범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그저 ‘적당히’ 듣거나, 혹은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삶”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하나라도 허투루 하지 않고 소중히 마음에 간직하는 삶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바로 이 받아들임을 통해서 구세주의 탄생, 구원의 탄생에 협력하셨습니다.
“구세주를 탄생시키는 삶”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삶인지요! 하느님을 받아들이면,
그분의 말씀을 내 안에 간직하면 우리 안에서는 구세주가, 구원이 탄생하게 됩니다.
좀 전에 우리가 본기도에서 성모님을 닮아
저희도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도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삶,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사는 삶 말입니다.
성령에 이끄심에 따라 산다는 것은, 내 뜻-내 방식에 성령의 도움과 힘이 뒤따라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성령의 뜻과 성령의 방식에 내가 따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내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모님이 보여주신 삶, 구세주를 탄생시키는 삶, 구원을 탄생시키는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이처럼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겸손하게 하느님을 따를 때,
우리가 세상은 주지 못하는 기쁨을 나누게 되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모님과 엘리사벳이 기뻐 노래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지요.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내가 가진 생각, 내가 가진 걱정, 계획, 자존심 있지만, 그보다 주님의 말씀을 믿으신 분! 받아들인 분! 성령에 따르신 분!
그리고 이것을 조금 더 실천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예를 들어 내 마음에 좀 답답한 사람이 있지만
그런 사람도 좀 받아들여주는 그런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 삶 안에서 마주치는 일-사람들을 그저 내 기준에서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는 하느님의 뜻을 겸손하게 찾고
그것을 먼저 받아들이려 한다면 우리는 저절로 이렇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사실 바로 그러한 삶이야말로 어머니께서 진정 기뻐하는 선물이 될 겁니다.
사실 어머니가 바라는 것은 자녀가 자신에게 무슨 대단한 것을 해주는 것이기보다도,
무엇보다 형제간에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모성월 마감하며,
어머니께 드리는 사랑의 선물로, 그저 한 번의 꽃과 선물만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사랑을 다짐하고 봉헌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생각, 내 걱정을 우선하느라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삶, 일치하지 못하는 삶, 의심하는 삶, 감사하지 못하는 삶이 아니라,
먼저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삶, 먼저 성령을 따르는 삶,
그래서 감사와 기쁨 속에서 화합과 일치를 도모하는 그 삶을 다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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