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0530 나해 연중 제8주간 수요일
2018-05-29 21:06:38
박윤흡 조회수 1121

 

  요즈음 교구에서 준비해주신 사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어제의 주제는 ‘인권’이었어요.

인권을 주제로 하면서 여러 키워드가 나왔습니다. 소통, 공감 등.. 

강의 중에 강사님께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으면 좋을 일상의 문화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 질문을 받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배 신부님들과 대화를 하던 중, 한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 문화는 ‘권위와 섬김의 균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권위만 내세워서도 안 되고, 섬김만 강조해서도 안 되는 것.

권위와 섬김이 삶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이룰 때, 우리 문화는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따를 수 있지 않을까?”

 

  제가 저녁이 되어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선배 신부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책의 한 페이지를 찍어 보내주셨습니다.

  “권위와 섬김 사이에는 적절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사목자가 ‘여기선 내가 통치합니다.’라고 단언하거나

또는 ‘나는 단지 섬기기만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균형이 깨집니다.

사목자는 섬기며 통치하고 통치하며 섬겨야 합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

 

  오늘 복음에서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다가와”(마르 10,35) 말합니다.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르 10,37)

 

  야고보와 요한은 앞서 예수님께서 ‘조롱과 침뱉음, 채찍질로 인한 수난’을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마르 10,34)이라는 영광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떻게 보면,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이 얻게 될 ‘권위’만을 쫓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교육은 그 방법론이 특별합니다. 다시 제자들에게 물으시죠.

아마도 이 되물음은,

‘지금은 깨닫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내가 알려주는 이것들을이 기억나서 그때서야 깨닫게 될거야.’라는

의도가 담겨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권위’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권위가 있기 위해서는 분명히 그 권위를 위한 고통과 인고의 시간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

쉼없는 자기포기와 하느님 앞에서의 순명만이 참된 권위를 가져다주리라는 것을 당신 몸소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계속적인 섬김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선배 신부님의 말씀이 다시금 되뇌어집니다. ‘권위와 섬김이 균형있는 문화.’

바로 그 긴장 속에서 공생활을 이어가신 아래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이정표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쨰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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