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0527 나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2018-05-26 13:45:27
박윤흡 조회수 1195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 대축일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마태 28,19)

 

  흥미롭게 다가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이제 너희를 통해 나의 제자가 될 사람들에게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쉽게 말해서, 우리가 하느님과 가까워지기 위해

이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신앙 생활의 도입부이자 전부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Q.  삼위일체 하느님이 등장하는 우리 신앙생활의 일면은 무엇이 있을까요?

 

- 세례성사,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000에게 세례를 줍니다.”

- 성호경,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영광송,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사도신경,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을 믿으며...” /

이 사도신경은 3세기경 성립된 기도문인데 사도 시대까지 거슬러 갑니다.

2,000년 동안 교회 공동체는 이 기도문을 고백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 4대 교리가 있어요.

천주존재, 상선벌악, 강생구속, 삼위일체.

천주존재는 ‘존재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교리,

상선벌악은 ‘하느님 자비’에 대한 교리,

강생구속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에 대한 교리,

삼위일체는 ‘세 위격이시나 한 분이신 하느님’에 대한 교리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이해가 안되는 것이 바로 이 ‘삼위일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가 봉헌하는 기도의 대부분에 삼위일체가 등장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렇게 삼위일체가 강조되는 것일까?’

 

  오늘 강론을 준비하면서, 도미니코 수도회 신부님이시자, 삼위일체 전문가로서,

교황청 성 토마스 데 아퀴노 대학 교수인 ‘주세페 마르코 살바티’Giuseppe Marco Salvati의 저서

‘한 분, 삼위이신 나의 하느님-그리스도인의 모범이신 삼위일체-(이현미 옮김, 분도출판사, 2011)을 펴보았습니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첫 문장부터 매우 흥미롭습니다.

 

  “지금부터 인간에게 가장 높고 중심이 되는 근본적 실재를 고찰하게 된다.

바로 한 분이며 삼위이신 우리 하느님이시다.”(한 분, 삼위이신 나의 하느님, p,11)

 

 

  페이지를 조금 더 넘겨보니, ‘삼위일체의 현존과 체험’이란 챕터에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쓰셨습니다.

 

  “신약성경 시대 직후의 교회 공동체 안에는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교회 공동체의 삶 안에 이미 ‘삼위일체’가 ‘현존’하고 있었다는 사실,

곧 하느님 세 위격에 대한 믿는 이들의 ‘체험’이 벌써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삼위일체 신앙이 신학적, 이성적 고찰 대상이 되기 이전부터

이미 믿는 이들의 삶에 불가결한 부분이 되어 있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삼위일체는 ‘천상적 정리’가 아니며 삶과 분리된 단순한 의견이나 별반 상관없는 진술이 아니다.

오히려 삼위일체는 사랑의 대상이고 기도의 도달점이자 배경이며,

나날의 삶에 항구한 지침이자 신앙과 희망의 동기가 되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도록 믿는 이들을 촉구하며 구원의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한 분, 삼위이신 나의 하느님, p.106-107)

 

  ‘삼위일체는 삶의 지침이자 신앙과 희망의 동기가 되었다.

서로 사랑하도록 믿는 이들을 촉구하며 구원의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삼위일체의 핵심 포인트가 무엇일까?

저는 ‘서로를 향한 사랑의 내어줌’이라고 묵상합니다.

성부는 성자와 성령에게, 성자는 성부와 성령에게,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 내어주는 서로를 향한 사랑 말이죠.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범은 바로 이 내어주는 사랑에 있지 않을까요?

 

  쉽게 풀어내려해도 인간의 언어로는 결코 완전히 풀어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는,

‘사랑의 신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삼위일체 대축일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바로 ‘사랑의 신비’라는 사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그 신비스러운 사랑을 닮아,

나 또한 하느님께 나를 내어드리고 나아가 내 이웃에게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할 때,

삼위일체 사랑의 신비는 우리 삶의 자리에서 꽃을 피울 것이라 믿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이 교우분들의 삶 곳곳에 가득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댓글 2개

top 뒤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