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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는 마르코 복음사가의 축일을 기념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르코 복음은 11,229개의 그리스어로 구성되어 었고,
총 16장으로 다른 복음서에 비해 간결하고도 체계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저서 ‘복음서간의 일치에 관하여De consensu evangelistarum’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마르코는 가장 거룩한 요약자입니다.”
질문 드리겠습니다. ‘마르코는 예수님의 직제자였을까요?’ 우리는 12사도를 알고 있어요.
베드로, 마태오, 대야고보, 소야고보, 요한 타대오,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토마스 가이옷 사람 유다입니다.
훗날, 제비를 뽑아 마티아가 선정되었죠. 그렇다면 마르코는 어떻게 예수님을 기록하게 되었는가?
성경학자 진프랑코 라바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르코 복음은 복음사가가 베드로의 회상과 설교들을 모아 놓은, 베드로의 귀중한 월계관으로 싸여 있는 본문이다.”
이 학자는 마르코가 자신이 쓴 복음서에 베드로의 이야기를 모아놓았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어서 130년경 지금 터키(과거 히에라폴리스)의 주교였던 성 파피아스는 마르코에 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베드로의 해석자가 된 그는 베드로가 기억하는 주님의 모든 말씀과 행위를 정확하게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순서대로는 아닙니다.
사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았고 그분을 직접 따르지도 않았으며, 다만 베드로와 동행했던 것입니다.”
아!
이제야 ‘마르코 복음사가를 기념하는 오늘’ 독서와 복음이 왜 베드로1서인지, 마르코 복음서인지 알게됩니다.
'교회가 우리에게 선포하는 것은 이 두 책을 통해서 ‘예수님의 제자됨이 무엇인지’ 말해주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 복음(마르코)을 보면, 승천을 준비하시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이 말씀을 읽는데 이상하리만치 소름이 끼칩니다.
‘내 이야기를 전해줘! 기쁜 소식을 살아라!’
그러자 제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마르 16,20)
마치도 한 장만의 드라마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렇게도 ‘전 안떠납니다! 스승님이 가시는 곳은 따라가겠습니다!’했던 그 제자들이에요.
그리고 예수님은 배신을 당하고 결국 죽음에 이릅니다.
부활하신 그분은 다시 나타나셔서 그 배반했던 제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다시 기쁘다며 ‘제가 하겠습니다!’하는 것이죠.
그리고 제자들 중 대장이었던 베드로가 오늘 1독서(베드로1서)에 등장합니다.
이제 베드로는 확신에 차서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자신을 낮추십시오!
인간적인 겸손이 아니라, 인간에게 잘보이기 위한 허황된 위선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맞갖게 살아가십시오!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확신에 찬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선포합니다.
바로 우리를 향해 외치고 있는 것이에요. 이제 우리들의 몫이 남았습니다.
“필요에 따라 배반하고 말아버리는 그분의 ‘팬’ 정도로 남을 것인가?
아니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다시 한 번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라는 자신감으로 그분을 따르는 제자가 될 것인가?”
우리들의 식별어린 선택이 달린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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