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0422 나해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2018-04-21 13:09:22
박윤흡 조회수 1531

  교회는 오늘 성소주일을 기념합니다. 특별히 성소주일을 맞아 저는 ‘사제직’에 대해 묵상합니다.

서품을 받은지 어느새 4개월 정도가 흘렀습니다.

이제 사제 생활의 첫 발걸음을 뗀 애기신부지만 세상 한 복판에서 사제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럴수록 끊임없이 ‘첫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기억하며 회상하려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신문 기사 하나를 보았습니다.

가톨릭 신문도 평화신문도 아닌 일반 대중 신문에서 ‘문화 칼럼’부분에 한 신부님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기사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시골 장터로 김밥 배달하던 얼굴없는 신부를 아십니까?’

 

 

  이 신부님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성당 난방을 켜놓고

승합차를 몰고서 마을 어르신들을 새벽 미사에 모시고 오신다고 해요.

또 어르신들이 많은 동네여서 그런지 몰라도 새벽에 장터를 찾아

교우분들에게 따뜻한 두유와 김밥을 배달하신다고 합니다.

언젠가 신자들이 신부님에게 ‘돌침대’를 선물하려고 하니까

되려 그 돈으로 혼인하신 모든 부부를 초대해서 은반지를 선물하셨다고 합니다.

성경 공부, 성경 필사 운동 등의 활동도 하시면서 신자들의 영적인 유익까지도 고민하시는 그런 신부님이십니다.

  이 신부님은 두 가지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계십니다.

‘씬부님, 싸랑합니다. 항상 고맙듭니다.’라는 받침이 틀린 한센인의 문자와

어머님이 주신 버스표 10장이 그것이에요.

사제 서품을 받을 때 어머니께서 이 버스표 10장을 쥐어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아들 신부님은 버스타고 다니세요. 신부님이 만나는 신자들 대부분이 버스타고 다닌다오.”

 

  당신의 삶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시는 이 신부님은 인터뷰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해요.

‘저는 대접받고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소박하고 가난한 성당지기가 되고 싶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사실 수 있을까?

성인사제이신 아르스의 장 마리 비안네 신부님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어떻게 그런 삶을 사실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나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신 예수님의 사랑 체험 때문이 아닐까...?”

교우분들은 성인사제, 착한 목자가 되어 달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길잃은 양인 나를 이끄는 목자이심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잃어버린 양을 찾아 떠나는 목자처럼,

그렇게 나를 물가로 데려가시는 분이 바로 나의 하느님이심을 잊지 않는 것이 내 소명이다.’

 

  지난 성유축성미사도 그랬지만,

특별히 성소주일은 제게 나의 목자이신 예수님을 되새김질하는 시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목자이신 예수님의 구구절절한 사랑은 비단 제게만이 아니라 부르심받은 교우분들에게도 다가가는 보편적인 사랑이죠.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어요.

“사제성소, 수도성소, 혼인성소가 있는데 그 범주안에 안들어가면 성소자가 아닙니까?”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부르심받았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운영하시는 목장의 양들로 축복받았다는 것이에요!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양들을 위해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서 돌보시려는 목자이신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를 기억하며

우리를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이번 주일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분께서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끝으로, 수도성소와 사제성소 심지어 혼인성소까지도 그 수가 감소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특별히 수도성소와 사제성소는 우리 시대의 교회가 겪는 어려움이자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각박하고 소외된 세상의 삶에서

하느님을 찾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중에 기억해 주시기를 청하며,

우리를 향해 영원한 사랑을 부르짖으시는 예수님의 외침으로 강론을 갈무리하고자 합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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