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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월 0일 0시 0분 범계역 사거리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00을 찾습니다.”
00은 무엇일까요? ‘증인’이죠. 어떤 사건에 대한 증인을 찾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말미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8)
또 1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전하고 있어요.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사도 3,15)
라틴어 성경 불가타를 열어보니,
두 대목에서 ‘목격’이란 의미를 갖는 testis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증인이라고 말한다면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듭니다. ‘어떻게 내가 예수님을 목격했다는 것인가?’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루카 24,35)
깊이 묵상해 볼 만한 말씀입니다.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길에서 겪고 그분을 알아보게 되었다.’
매일 미사 때마다 거양되는 성체를 보면서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그분을 겪고 또 알아보게 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한편,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 체험 속에서 ‘하느님이 정말 계시는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겪고 그분을 알아보게 되었다’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체험하는 영역 안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말입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이사야서 43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내가 선택한 나의 종이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고 나는 하느님이다.”(이사 43,10.12)
이제 물음은 조금 더 구체화됩니다.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2독서의 말씀이 해답을 주는 듯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1요 2,3-5ㄱ)
오늘의 요점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하느님의 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믿음의 눈으로 끊임없이 하느님을 바라보고 우리들의 양심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면서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때에 비로소 하느님 사랑이 완성되고
하느님 나라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도래하리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증인으로 초대하시고자 쉼없이 다가오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증거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참 어렵습니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실천이 잘 안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끊임없이 기다리십니다.
못과 창에 찔린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말이죠. 그리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고 나는 하느님이다.”(이사 43,12)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6)
친히 우리를 뽑으신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도 마음을 모아 응답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로 그 응답 속에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를 증인으로 초대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편안한 한 주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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