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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우리가 '마리아와 마르타'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한 인물,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로 닦은 사건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강론을 준비하며 이 글이 도움이 될 것 같아 길지만 적어보았습니다.
"우리는 세 사람이 예수께 매우 충실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우게 된다. 라자로는 손님들 틈에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그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것은 다음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가 베타니아에 계시다는 말을 듣고 많은 유대인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그들은 예수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라자로도 보고 싶었던 것이다(요한 12,9 참조). 마르타는 언제나처럼 바삐 움직였고 손님들의 시중을 들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값진 향유를 가지고 와서 충만한 사랑과 거룩한 미덕을 실천하였는데 그 나르드 향유는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선물이 되었다. 마태오가 보고한 것처럼 마리아는 주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어드렸고(마태 26,7), 요한이 보고한 것처럼 주님의 발에 향유를 발라드렸다.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 설명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향기로 집 안을 가득 채운 그녀의 깊은 진실성을 느낄 뿐이다. 제자들은 아직 소인이었으므로 불평을 터뜨린다.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 (향유를 부은, 예수님 발치에 앉아 있던) 마리아는 매우 소중한 그리스도교적 심성을 가졌다. 그녀 안에서 생동하는 정신과 그녀가 실제로 보여준 행동, 그리고 예수께서 그녀에게 확인시켜주신 말씀들은 그리스도인의 묵상을 위한 전형이 되었다. 인간의 존재는 두 가지 차원, 곧 외적 측면과 내적 측면으로 되어 있다. 한쪽에서는 말을 하고 행동하며, 다른 쪽에서는 사고하고 의견을 내며 결정을 내린다. 이러한 두 개의 영역이 사람 안에서 하나를 이루고 있으며, 존재를 형성한다.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하지만 내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 외적 차원의 존재는 그것에 선행하는 내적인 것에서 나오기 때문이며, 원인과 결과들은 외적인 세계에 놓여져 있으나 격정들은 내적 세계로부터 나온다. 인간의 삶에서 내적인 것은 외적인 것보다 우선적이고, 무엇보다도 먼저 명백히 되어야 할 '필수적인 것'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뿌리들이 병들게 되면 잠시 동안은 나무가 성장할 수 있으나 결국엔 썩고 말라 죽어버린다. 그 원리는 신앙생활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 (일을 성실히 했던)마르타가 행한 것은 마리아에 의해서 정당화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외적인 행위에 앞서서 고요한 중에 항상 내적 진실성과 사람의 심오함을 얻으려고 애쓰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며, 그같은 삶은 항상 활력있고, 가장 효과적인 삶이라 할 것이다. 또한 그 마음은 언제나 말에 앞서서 침묵을, 결과에 앞서서 동기의 순수성을, 활동의 성과에 앞서서 사랑의 관대함을 보여준다. 물론 두 개의 측면이 모두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단지 하나만 타당한 곳에서는 우선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 마르타의 불평은 활동적인 사람들에게서 자주 보게 되는 불평이다. 내적인 것을 지향하는 삶이란 것이 감춰진 게으름이나 종교적인 사치가 아닌가 하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다. 또 급한 일이 밀어닥쳐 항상 투쟁하듯이 살아야 하는 현실이고, 하느님 나라는 자신을 희생하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 마르타가 느꼈던 위험은 매우 자주 현실적인 일로 우리 앞에 놓여진다. 마리아의 태도 뒤에는 커다란 교만과 타성과 향락 추구적인 본성이 은폐되어 있기가 쉽다. 곧 많은 부당한 일들이 그러한 태도 안에서 정당화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좋은 몫을 택했다!'고 하신 예수의 말씀은 여전히 불변의 진리이다."
-로마노 과르디니 지음, 남현욱, 박재순 역, 주님(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인물), 바오로딸, 298-301-
위대한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는 열성을 다해 봉사하는 마르타의 태도와 더불어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었고 그분의 발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태도 모두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가장 좋은 몫을 택하는 것'이라고 끝맺죠. 좋은 몫이 무엇인가?
전임 교황이셨던 베네딕도 16세 교황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도전들에 맞서 신학적 추론과 이성적 논리를 통해 답하셨습니다. 정말이지 신앙을 파괴하고, 신학에 도전해오는 온갖 세속적 질문들에 대해 치밀한 접근으로 답하셨어요. 그런데 베네딕도 16세 교황님께서 모든 물음에 답을 하시고서 늘 마지막에 던졌던 질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많은 주제들을 가지고 토론을 했어요.
그런데 도대체 이 토론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유익이 뭐죠?
사실 저는 이 치밀한 토론과 논리 전개보다도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오늘 예수님을 몇 번 생각했습니까?'"
바로 이 질문이야말로, '가장 좋은 몫을 택하는 자세'가 아닐까 묵상해 봅니다.
마르타의 태도도 중요하고, 마리아의 태도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상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분을 생각하는 습관이겠죠.
이번 성주간.. 예수님을 보다 더 많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현존연습'이 습관화된 거룩한 시간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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