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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셔서 육을 취하셨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우리와 같은 이성과 감정, 기억과 의지를 하느님 아버지께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나약함도 있으셨고 아픔과 상처도 있으셨으며 기쁨과 행복을 느끼기도 하셨던 그런 예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인격적’이라고 함은 사람에게 느끼는 사랑의 속성을 예수님께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할 위험에 처하십니다.
상처를 싸매주시고 병을 낫게 하시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셨던 예수님이셨어요.
그분의 목적은 단 하나,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라는 이 문장을 심장 깊이 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의 정신은 둘째치고 유다인들은 그저 ‘하느님을 모독한다’는 명분으로 예수님을 질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대단하신 것은, 당신의 방법대로만이 아니라
그들의 시선으로, 그러니까 율법 준수에 철저했던 유다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그 방식으로 반문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요한 10,39)만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셨는가?’하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요한 10,40).
저는 문득 예수님께서 ‘피정’하러 가신 것 아닐까 싶었어요.
당신께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으셨던 곳,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
이 음성을 몸과 마음과 영혼에 되새기려 했던 것이 아닐까..
‘첫마음’을 회상하며 영적 힘을 갈망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 말씀은 예수님의 간절함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예레 20,11).
‘주님! 주님께서 저들에게 해코지 해주세요!’가 아니라
‘저를 구해주세요. 저를 도와주세요!’하는 간절한 외침이 담긴 말씀입니다.
독서의 말미에 이런 말씀이 나오죠.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예레 20,13).
산상설교 중에 한 말씀...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마음이 가난하다는 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나의 가난을 겸손하게 수용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시죠.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신앙생활을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느님을 찾고 그분의 뜻을 발견하려는 것..
그분께 매달리면서 나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자세로 주님 음성에 귀기울이는 것..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바로 이런 겸손된 태도가 아닐까 묵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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