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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하여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나는 바리사이인가, 세리인가?'
바리사이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저는 강도 짓도 하지 않고 불의도 저지르지 않았으며 간음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저 사람들을 등쳐먹는 세리처럼 살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삶을 마련해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 뿐 입니까? 저는 두 번 단식도 하고 십일조도 봉헌합니다!'
그런데 반면 세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바리사이인가, 세리인가?'
그런데 잘 성찰해 보면 우리는 바리사이같기도 하고 세리같기도 하지 않나요?
적어도 저 자신은 그러한 것 같습니다.
바리사이처럼 '저 좀 봐주세요! 저 이렇게 노력하고 있어요. 칭찬해 주세요!'하면서 기도할 때도 있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어맡기며 그저 은총으로 부어주시는 자비를 청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위의 내용보다 더 깊게 '의로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의로움이 무엇인가?'
복음의 내용을 보자면,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루카 18,9)에게 말씀하시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말미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루카 18,14)
의문이 생깁니다. '의로움이 무엇인가?'
우리가 잘 아는 성 요셉은 "의로운 사람"(마태 1,19)으로 묘사됩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마태 5,6)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0)
이 산상설교(진복팔단)와 더불어 예수님께서는 또 이렇게 권고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
뿐만 아니라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우리의 정체성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어 의로움의 종이 되었습니다!"(로마 6,18)
이만하면.. '의로움'이 우리에게 얼만큼 중요한지 느껴집니다. 도대체 의로움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곁에 '백인대장'... 다들 기억하시나요?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백인대장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하고 말하였다."(루카 23,47)
조금씩 답이 보이는 듯 합니다.
라틴어 성경을 찾아보니, '의롭다'라는 단어의 어원은 iustus입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justice죠.
바른, 정당한, 정의로운, 공정한..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성경에서는
'바르고 정당하고 정의롭게 또 공정하게 살아가는 것'이 '의로움'이라고 표현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 삶이 바로 '의로운 삶'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어떻게 의롭게 살아갈 수 있으셨을까..
묵상해 보면 예수님의 중심에는 '아버지 하느님' 그 분이 계셨어요.
하느님께서 알려주시는 정의롭고 정당하고 또 바른 삶을 사셨던 것이죠.
'아버지의 자비와 사랑'을 간청하는 구구절절한 믿음으로 말입니다!
의로움은 믿음을 통해서 온다는 것을 오늘 새롭게 알게 됩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 10,10)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로마 3,22)
다시 오늘 복음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바리사이가 의롭다 하지 않으시고, 세리를 의롭다고 하셨을까?'
세리와 예수님의 닮은 점을 꼽자면 '아버지의 자비와 사랑을 간청하는 구구절절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
이 믿음이 우리를 의로운 생각과 말과 행위로 이끌어 줄 것이며, 의로움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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