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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서 25장 1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을 경외함은 그분에 대한 사랑의 시작이요,
믿음은 그분에 대한 의탁의 시작이다.”(집회 25,12)
그리스도 신앙의 오랜 전통과 깊은 유산을 가진 일본의 대표적인 가톨릭 작가 소노 아야코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많은 것을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지만, 내 삶은 내 뜻과 상관없이 흘러갈 때가 많다.
소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결과에서 ‘하느님’의 깊은 배려를 찾아내는 것.
여기까지 생각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약간의 거리를 둔다, 소노 아야코 에세이, p.33-34)
집회서의 말씀과 소노 아야코의 언급은 ‘믿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참으로 어렵게 느껴지는 이 믿음!
무언가 있는 것 같긴 한데 확신을 갖기는 참 어려운 이 믿음!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는 우리에게 ‘믿음에 대하여’ 어떻게 말해주고 있을까요?
1독서는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쳐라!’(창세 22,2참조)하신 하느님의 시험에 들게 됩니다.
상상해 보세요.
늘그막에 얻은 소중한 내 아들, 그 아들의 손을 잡고 제물로 바치러 산으로 오르는 아버지의 마음..
‘아빠, 우리 어디가요? 왜 가요?’ 묻는 아들의 해맑은 눈동자를 보는 아버지의 그 마음.. 어땠을까요?
인간적인 마음에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원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결코 하느님의 뜻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예, 여기 있습니다.”(창세 22,1)
아브라함의 태도는 하느님을 향한 전적인 순종을 보여줍니다.
바로 이 사건으로 아브라함은 신앙의 선조, 믿음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죠.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너의 외아들을 아끼지 않았으니, 나는 네게 한껏 복을 내리겠다!”(창세 22,16-17 참조)
전적인 믿음을 보인 아브라함의 정성을 하느님께서는 절대 모른 체 하지 않으십니다.
한편,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에 대해 소개해줍니다.
복음은 이렇게 전하죠.
“예수님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마르 9,3)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변모된 모습’을 보여주셨을까요?’
저는 9절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마르 9,9)
‘나는 이제 십자가의 길을 걷고 죽음을 맞이할 것 같아.
그런데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할거야! 믿음을 가져.
내가 부활하리라는 것에 대해 믿음을 가지라구!’
쉽게 말해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에 대해서 2독서에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로마 8,34)
우리 신앙은,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죠.
그런데 질문이 생깁니다. ‘아니.. 그런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입니까?’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사도신경)
영원한 삶!
영원함.. 피할 수 없는 죽음 너머에 있는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
우리가 신앙을 믿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순종과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도 바오로의 고백은
오직 ‘믿음’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
오늘 강론은 믿음을 통해 영원한 삶을 갈망하는 우리에게, 확고히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약속으로 갈무리하고자 합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