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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마르 1,12-13)
작년 여름, 보름 간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우리 교우분들 중에도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분들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수많은 성지를 돌며 은총의 시간을 보냈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곳은 ‘광야’였습니다.
광야는 이글이글 내리쬐는 태양과 열이 올라 뜨거운 모래밖에 없는 척박한 땅이었어요.
저희에겐 1시간이 주어졌고, 자유롭게 묵상하고서 차로 돌아오라는 공지를 들었습니다.
혼자 광야를 걸으면서 ‘예수님은 이 곳에서 어떤 기분이셨을까?’ 이 물음을 묵상했습니다.
그렇게 20분이 지났습니다.
정말 땀이 비오듯이 쏟아지는 거에요.
아직도 40분이 남았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더위가 숨통을 조여 오고
소리를 질러도 메아리만 돌아왔습니다.
분명 30명이 출발했는데 주변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두려움과 불안감이 제 마음에 엄습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 말씀이 떠올랐어요.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마르 1,12)
성령께서 내보내셨다.. 왜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보내셨을까?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이나 광야 살이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요?
저의 경험상, 아무것도 없는 그 곳에서 제가 찾을 곳은,
또 의지할 곳은 ‘하느님’ 밖에 없었습니다.
마태오 복음에 나온 유혹사화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 4,10)
우리 모두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자격을 받았습니다.
오늘 2독서에서 베드로 사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1베드 3,21)
우리가 받은 은총의 세례성사는 단순히 몸만을 깨끗하게 하는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바른 양심을 갖고, 육신의 부활로 나아가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사건임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께서 광야에 유혹을 받으러 나가시기 직전에, 세례를 받으셨다는 사실입니다.
한편 1독서의 창세기는 ‘계약’에 대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성사’로 번역되는 라틴어 Sacramentum은 ‘계약’이란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세례성사의 은총을 받았다’는 것은
‘하느님과 긴밀한 계약을 맺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이 세례성사의 인호가 바로 ‘나 자신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하느님과 떨어질 수 없는 불과분의 관계에 놓여지게 된 표징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계약을 맺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20)
우리는 많은 경우,
각박한 세상 속에서 번민과 외로움, 갈등, 인간관계의 어려움에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의 자리가 ‘광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주님께서는 ‘내가 너와 계약을 맺고 싶다’며 구구절절한 고백으로 다가오십니다.
하느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실 분이 아니십니다.
이 광야에서 우리와 만나고 싶어하시고 우리와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십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광야 한 복판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오늘 사순 제1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절제와 단식, 물론 중요하지만 사순시기의 핵심은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겠다’ 약속하신 하느님의 사랑고백을 기억하며,
우리 삶의 광야 속에서도 하느님을 발견하는(하느님의 현존 연습) 은총의 사순시기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