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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신명 30, 19-20)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생명’을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이란 단어는 성경에 526번 나옵니다.
‘생명’하니 떠오르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우리 시대에 가장 간과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키워드는 바로 ‘생명’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성경 구절에선,
‘생명’이란 ‘하느님의 모상’, 쉽게 말하면 ‘창조된 인간’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생명을 존중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가치’를 잊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러한 물음들에 봉착합니다.
‘도대체 인간의 존엄성을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소중하다는 그 말씀을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겠는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시죠.
제 묵상에서 이 십자가는 ‘나 자신’을 포함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내 몸뚱이 가누기도 힘들지만, ‘나 자신’을 포함한 내가 만나는 주변 사람들까지도 함께 지고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힘들어요.
진짜 나 가누기도 어려운데 주변 사람들까지 하느님을 향한 여정에 놓겠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지고 갈 때에 비로소 ‘예수님을 따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생명을 선택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언제나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하시어 따라다닌 것처럼
내 주변의 이웃들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 몫 챙기려고 하면 잃을거야.
그런데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너 몫을 포기하면 얻을거야. 생명을 얻을거야!’(루카 9,24 참조)
정말이지, 내가 ‘온 세상’을 얻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참 기쁨은 허세와 허영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참 기쁨은 소박한 사랑 나눔 안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세속적인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세상...
우리가 이러한 세상을 맛보고 체험할 때 주님께서는 기뻐하실 거에요.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31)
가정 안에서, 직장에서 그 밖에도 수없이 만나는 내 삶의 울타리 속 사람들...
그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산다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걸 바라십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어려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에
이 말씀이 우리 삶의 자리에서 실현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