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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수차례 사주를 봐왔던 자신의 모습에 대해 힘들어하던 한 교우분’ 생각이 났습니다.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앞길에 대해 조금이나마 궁금한 나머지 사주를 봐왔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좋은 말을 들으면 ‘정말 그런 일이 생길까?’하는 기대감에 차올랐고
생기지 않았을 때는 실망감이 어마어마하게 다가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면에, 나쁜 말을 들었을 땐 ‘괜히 봤어.’라는 생각과 더불어서
‘정말 나한테 그런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닌데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공통적으로 다가온 감정은 ‘불안감’이었다고 합니다.
(우리 삶은 믿는대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주를 보고 그걸 믿어버린다면... 우리 삶은 그렇게 될 수 있어요.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그걸 봐주시는 분들도 모두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올바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직설적으로 말하면,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실제로 1분 뒤에 일어날 일도 예측할 수 없어요.
혹자는 ‘인간이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가는 존재다. 그래서 위대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표징을 요구’합니다.
말 그대로, ‘보여 달라’는 것이죠. 예수님께 ‘조건부 형식의 믿음’을 두는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언제 이런 생각이 들까요?
좌절과 시련, 절망과 고통의 울타리 속에 갇혔을 때,
나의 힘으론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들었을 때..
이 밖에도 ‘나의 한계’에 직면하는 그 순간이 오면 하느님께 표징을 요구하게 됩니다.
어쩌면 아주 당연한 모습이에요.
‘주님, 당신이 계시다면 저 좀 잘 살게 해주세요!’라는 부르짖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독서에서 사도 야고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베푸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 결코 의심하는 일 없이 믿음을 가지고 청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야고 1,2-7)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은 우리를 선으로 이끄신다.’는 그리스도 신앙의 명제가 아닐까요?
사도 야고보의 말씀처럼 ‘하느님은 너그럽게 베푸시고 나무라지 않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느님께 절실한 믿음을 둘 때 비로소 ‘불안감’은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다 해주실 것이니까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선으로 이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음’... 정말 믿음이 중요합니다.
앞서 강론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 앞에서 ‘믿음’을 요청하셨고
온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셨다는 점,
우리는 오늘 필히 이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