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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시절, 사목 실습으로 한 달간 호스피스 병동에서 지냈던 적이 있습니다.
경기도 포천에 있는 '모현 호스피스'였어요.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에서 운영하는 곳이며,
수녀님들께서는 '갈바리 영성'(예수님의 십자가 곁에서 임종을 지키셨던 성모님을 본받아)을 살고 계셨습니다.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정신은 마리아의 ‘모성’을 본받음이요,
임종이 영원을 좌우하는 것인 만큼 신자들이 선종을 맞도록 돕는 일이
그분 마음에 꼭 드는 사랑의 사업임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초대 회헌과 규칙 제1장)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한국 진출 50년사, p.16-
병동에 누워계신 할머니 한 분이 계셨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젊은 시절엔 대통령의 코디를 담당하는 디자이너로 활동하시면서 소위 잘 나가는 삶을 사셨다고 합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오셨는데 몸이 아파지기 시작하자
친척들이 붙어서 벌어둔 돈을 야금야금 다 가져갔고 지금은 연락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이젠 의식불명 상태로 임종을 기다리고 있는 분이라며 수녀님께서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여쭈어 보았습니다. “수녀님, 제가 이 분을 위해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손을 잡으세요.
뭘 해도 좋으니 한 쪽 손은 꼭 할머니 손을 붙잡고 계세요.”
사실 저는 의아했습니다.
‘손만 잡고 있으면 되는 걸까? 왠지 물도 떠드려야 될 것 같고.. 그밖에도 이것저것 할 게 많을 것 같은데.’
식사 시간을 제외하곤 정말 하루종일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5일이 지났을까..
손을 꿈틀꿈틀 움직이시더니 할머니께서 몸을 일으키신 거에요.
의식불명이셨던 할머니께서 몸을 일으키신 겁니다!
이후 함께 산책도 나가고 많은 얘기를 나누었어요.
하지만 이미 암세포가 몸 전체에 퍼져있던 할머니께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임종을 맞으셨습니다.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할머니의 말씀이 있어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교회는 ‘세계병자의 날’을 맞아 아파하는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파하고 있는 이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마르 1,41) 다가가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마르 1,41-42)
손을 내미는 것, 특별히 요즘 같은 세상에 누군가를 위하여 ‘손을 내미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소위 ‘나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나도 힘든데..’라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어요.
누군가를 돕고 위한다는 건 어쩌면 바보같은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행동양식은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초대합니다.
이웃을 향하여 손을 내밀 때에
비로소 우리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도래할 것임을 확신하고 계시죠.
하느님 나라는 뜬구름 잡는 것이거나 멀리 있는 세상이 아니에요.
현세를 떠나 내세에서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주시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있음을 알려주시고자
하느님 친히 세상에 오신 것이고 참 사랑의 삶을 몸소 보여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 4,12)
우리 모두는 각자가 아닌 공동체이며, 개체가 아닌 인격체입니다.
우리는 떨어져 있는 섬이 아닙니다.
아파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미셨던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겸손과 용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나 자신의 일부이다.
내가 인류의 일부이고 일원이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내 신체의 일부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 또한 그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 그들에 의해 행해진다.
그들이 하는 일은 또한 내 안에서, 나에 의해, 나를 위해 행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 완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다.’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 무엇도 결코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인간은 섬이 아니다’,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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