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0203 나해 연중 제4주간 토요일
2018-02-02 23:29:31
박윤흡 조회수 1026

  오늘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마음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마르 6,34)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영어 성경에선 compassion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연민’, ‘동정심’을 의미하는 동사입니다.

라틴어 성경을 보니 misertus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miser가 원형입니다.

‘불쌍한’, ‘가엾은’, ‘가련한’을 의미하는 형용사입니다.

 

 

  예수님의 자비를 묵상하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자비의 특별 희년 선포 칙서’인

‘자비의 얼굴’misericordia vultus을 영적 독서하였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칙서 8항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오는 군중을 보시자

그들이 지도자 없이 길을 잃고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것을 알아채시고 무척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마태 9,36 참조).

그분께서는 가엾게 여기시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데려온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마태 14,14 참조),

빵 몇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수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마태 15,37 참조).

이 모든 상황에서 예수님을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자비였습니다.

그 자비로 당신께서 만난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절실한 바람을 채워주셨습니다.

외아들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나인의 과부를 만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울부짖는 어머니의 커다란 고통을 보시고 무척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 아들을 죽음에서 다시 일으켜 어머니에게 돌려주셨습니다(루카 7,15 참조).

게라사인 지방에서 마귀 들렸던 사람을 고쳐 주시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너에게 해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마르 5,19).

마태오를 부르신 것도 자비의 맥락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관 앞을 지나시다가 마태오를 바라보셨습니다.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는 자비의 눈길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수님께서는 죄인이며 세리인 그를 뽑아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로 삼으셨습니다.

베다 성인은 이 복음 구절을 설명하면서,

예수님께서 마태오를 자비로운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시고 그를 선택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자비로이 부르시니”(miserando atque eligendo)라는 말씀에 감동을 받아 저는 이를 제 문장에 넣었습니다.”

 

 

  종파와 인종을 초월하여 ‘살아있는 성인’이라 칭송받는 교황님께서

당신의 교황직 수행 문장에 ‘하느님의 자비’, ‘예수님의 가엾어 하시는 사랑의 성심’을 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자비는 결코 끝이 없습니다.”(자비의 얼굴, 25항)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돌보시고 감싸안으시는 하느님의 자비는 얼마나 위대합니까?

우리의 상처와 아픔, 고통과 절망, 기쁨과 희망,

그 밖에 모든 인간 삶의 자리에 하느님은 자비의 얼굴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교황님께서는 선포하고 계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의 얼굴이십니다.”(자비의 얼굴, 1항)

이 회칙을 갈무리하시며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히십니다.

“그 누구보다도 먼저 교회는 자비의 참된 증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계시의 핵심인 그 자비를

찬양하고 실천하라는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자비의 얼굴, 25항)

 

 

  언제나 우리를 바라보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을 닮아,

우리 또한 자비와 사랑이 담긴 미소와 시선으로 이웃을 대하는 것.

바로 이 부르심에 응답할 때에 우리는 좁은문으로 들어갈 것이며,

하느님 나라가 그 순간 도래할 것이고,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저는 하느님의 자비를 믿습니다.

그분은 사랑과 자비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추신: ‘자비의 얼굴’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꼭 읽어보시기를 강권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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