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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예수님'을 그리고 있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마르 6,2)
그리고 복음 사가는 그들의 마음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마르 6,3)
라틴어 성경을 보니, 'scandalizbantur'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Scandalizo'의 3인칭 과거 복수 직설법 수동태의 형태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못마땅하게 여겼다.'로 해석되고 있는 것입니다.
'Scandalizo'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 번쯤 묵상해 볼 만한 '성경 속 라틴어 단어'가 아닐까 싶어요.
익숙치 않고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사람들..
그들의 마음 안에는 열등감을 비롯한 부정적 감정의 얼개들이 얽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경험이 없을까요?
'나는 누군가를 고의적으로 걸려 넘어지게 한 적은 없는가?
나의 나쁜 본보기로 인해 누군가가 죄를 짓게 한 적은 없는가?
나의 비위에 거슬린다며 누군가를 못마땅하게 여긴적은 없는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신앙의 길에서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신뢰가 흔들리기도 하는 건 사실입니다.
'못마땅하게 여기게 된'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나 중심의 사고방식'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살아갈 때 '하느님 중심'이 아닌, '나 중심'의 견고한 벽을 쌓아간다면,
나도 모르는 순간에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잃고 갈피를 못잡은 상황에 처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성 요한 보스코 신부님'의 이야기를 잠깐 언급할까 합니다.
성인이야말로 탁월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신 분이십니다.
'청소년들의 아버지요 스승'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계신 성인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청소년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며, 공부하고, 내 생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청소년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이셨고,
미성숙한 청소년의 언행에 못마땅히 여기지 않으셨으며
신앙의 길에서 걸려 넘어지거나 신뢰를 잃어가는 청소년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전해주면서
마치도 예수님처럼 사셨던 분이 바로 교회가 기념하는 '성 요한 보스코'입니다.
첫째도, 둘째도, 오직 '사랑'입니다.
나를 비우고 하느님을 채우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바로 성인의 삶이었으며,
오늘 우리는 이 삶으로 초대받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치도 예수님께서 "예언자"(마르 6,4)로 사셨던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