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나눔게시판 > 복음의 기쁨
오늘 교회는 사도 바오로의 회심 축일을 기념합니다.
사도의 회심을 묵상하면서 제 마음에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분의 자비와 사랑이 정말로 큰 은총임을 다시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에 따르면, 사도 바오로는 굉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남녀 상관없이 ‘예수’를 그리스도 메시아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을 싸그리 잡아다가
감옥에 넣고 온갖 모욕을 강행하던, 아주 열성분자 중에 극도의 열성분자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가고 있던 바오로에게 신비 체험이 일어납니다.
그 장면은 1독서에 아주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사울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 9,4)
그러자 사울이 응답합니다.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죠.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사도 9.5)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가던 그 사울에게 이 십자가에 못박혀 계신 분,
우리가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신기한 점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박해하는 사울을 결코 힐난하거나 비난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무력으로 사울을 치신다거나 욕보이게 하지도 않으십니다.
오히려 사울을 사랑으로 감싸고 계십니다.
자비와 용서로 사울을 대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바로 여기에서 하느님 사랑의 전능하심이 드러납니다.
이 이야기는 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살아가면서 내면의 음성에 귀닫아 버리고 제 편한대로 말하고 행동했던 것들,
안되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저질러버렸던 저의 죄목들,
사람을 미워하고 무시해버린 태도들.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저의 나약한 모습은 예수님을 박해하던 사울과 바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울의 모습도, 제 모습도 사실 예수님께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방식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사랑방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하는 자기비움의 태도’입니다.
이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표적으로 삼는 온갖 화살을 사랑의 마음으로 받아들이시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그 사랑을 체험하고서 예수님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였습니다.
그 사랑은 지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초대합니다.
나의 비참함과 죄스러움, 삶의 고통과 아픔,
어려움과 두려움에 빛을 비추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분께는 나의 어떤 모습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분께 중요한 것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체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기억을 기억했던 사도 바오로의 회심 고백으로 오늘 강론을 매듭 짓고자 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댓글 2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