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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는 '현대 영성의 아버지'요, '우정의 성인'이시며, '사랑의 박사'이신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를 기념합니다.
성인의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신심생활입문'이 있습니다.
읽어보신 분들도 계실거에요.
이 영성서적은 '평신도의 영적 성장을 목표'로 쓰여진 책이며, 수다의 비유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별히 문체는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 사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필로테아'에게 쓴 편지글 형식으로 되어 있어요.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들이 계시다면, 꼭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정의 성인, 사랑의 박사라고 불리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신심생활입문에서 '사랑-우정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사람의 정서 중 첫째가는 것이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주체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의 중심으로써 우리를 사랑가득한 사람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그런데 사랑이라고 해서 모두 다 우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인께서는 '사랑'과 '우정'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계신거에요. 이어서 사랑과 우정의 관계에 대해 세가지를 말씀하십니다.
1. "자기가 사랑을 받지 않고도 남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사랑은, 사랑은 있지만 우정은 없습니다.
우정이란 서로의 사랑이므로 상호작용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친구 관계도그렇지만, 하느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나만 사랑을 받는 것도 아니고, 나만 사랑을 주는 것도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상호작용적인 사랑'을 줄 때에 '우정다운 사랑'이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2. "우정은 상호작용일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두 사람이 의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사랑이라 해도 우정은 아닙니다."
계속적인 의식과 의지적인 노력이 우정다운 사랑에 필수적 요소임을 성인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3. "서로 선한 마음으로 교제를 해야 우정의 기초가 다져집니다. '선'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곧,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을 떄 누군가를 '이용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우정이 아니라는 것이죠.
마치 이런겁니다.
'하느님께 기도하면 내게 복이 올 것 같은데?'
이러한 태도는 진정한 사랑도, 우정도 아님을 성인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느님이 복을 안주시는 분이 아니죠!
그분께서는 자비와 사랑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복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잊으셔서는 안됩니다.
성인께서 말씀하시는 '우정다운 사랑'의 핵심 요소는,
'하느님과 내가 서로에게 서로를 내어주는 인격적인 친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오늘 복음의 내용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이야기"입니다.
씨앗은 뿌려지는데 다양한 형태의 땅위로 뿌려지죠.
'길'에 떨어지기도 하고, '돌밭', '가시덤불'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 씨앗들은 생명력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런데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싹이 나고 열매를 맺어서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고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상황과 환경, 감정의 변화에 따라 길이 되기도, 돌밭과 가시덤불이 되기도 하죠.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뿌리시는 사랑의 씨앗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라는
물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맑은 영혼, 올바른 정신, 굳은 신앙심으로 '좋은 땅'이 되어 있을 때에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께서 말씀하셨던
'우정다운 사랑'을 하느님과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묵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