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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에서 '인기스타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직무 수행과 더불어 예수님께 매료된 사람들을 나열하면서 그분의 힘을 종합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또 유다와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마르 3,8)
이렇게 사방에서 예수님을 보기 위해 벌떼처럼 모여듭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어요. 마르코 복음 사가는 오늘 복음(마르 3,7-12)를 사이에 두고서,
마르코 복음 2장 1절부터 3장 6절까지,
또 3장 20절부터 35절의 내용은 예수님과 적대관계에 놓인 사람들을 소개한다는 것입니다.
1.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장면에서는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말하죠.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마르 2,7)
2. 레위를 부르시는 장면에서는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하죠.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마르 2,16)
3. 단식 투쟁의 장면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예수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마르 2,18)
4. 이어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밀밭 사이를 질러가십니다. 그런데 또 바리사이들이 등장해요. 그리고 이렇게 시비를 겁니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마르 2,24)
5. 이제 예수님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십니다.
바로 그 장소에 "예수님을 고발하려고"(마르 3,2) 하는 사람들도 있고,
"바리사이들은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마르 3,6) 합니다.
정말 열심히 당신의 적대자들에 맞서 투쟁하신 예수님이시죠?
잠깐 숨을 돌리십니다.
오늘 잠깐 번뜩 '인기스타 예수님'이 등장하고 이어서 바로 열 두 사도를 뽑으십니다(마르 3,13-19).
그렇게 평화도 잠시... 바로 난관에 부딪히십니다.
사람들이, 그것도 "예수님의 친척들"(마르 3,20)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마르 3,21)해서 붙잡으러 다닙니다.
마르코 복음사가가 이렇게 복음 텍스트를 배열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적대'와 '대조'를 이루는 긴장감을 조성했을까요?
나를 적대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아버지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셨던 예수님 그분의 굳은 믿음과 강인한 정신력,
전적인 투신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묵상해 봅니다.
바로 '믿음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좋은 일을 해도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하고 멸시하고 때론 무시하기도 하며
뒷담화를 하고 심지어 미쳤다고까지 할지라도,
아버지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믿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1,11)라는
음성을 들었던 그 첫마음을 절대 잊지 않고 품고 가는 모습..
묵묵히 당신의 길을 걸으신 예수님의 인생철학에 감명받음을 넘어서,
그분을 따르며 닮아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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