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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정적이 만물을 뒤덮고 시간은 흘러 한밤중이 되었을 때,
당신의 전능한 말씀이 하늘의 왕좌에서 사나운 전사처럼
멸망의 땅 한가운데로 뛰어내렸습니다."(지혜 18,14-15)
교우 여러분, 이 말씀에서 어떤 신비가 떠오르시는지요?
우리는 어느새 성탄 팔일 축제를 지내고 연중시기의 출입문에 와 있습니다.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을 맞아 제가 강론의 서두에 성탄의 신비를 강조한 이유는
'성탄'과 '공현'이 서로를 향한 긴장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성탄의 신비는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신비로 하느님의 '인성'에 초점을 두고 있고,
공현의 신비는 인간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신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성탄과 공현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 안에서,
우리 믿음의 대상이신 '인성'과 '신성'을 한 몸에 받아 안고 계시는
하느님 다운 인간! 인간다운 하느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제는 성찬 전례의 도입에, 성작에 물과 포도주를 붓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도문을 봉헌합니다.
"이 물과 술이 하나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은 어떤 삶으로 초대받고 있는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삶에 참여하시기를 바라고 계실까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물과 술이 하나가 되듯이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그분의 인성과 신성에 동참하는 자격과 의무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섞였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공현은 그저 지나가는 대축일 정도로 보낼 수 없는 매우 중대한 사건입니다.
하느님이 공현하셔야 했던 이유는 바로 우리가 '하느님다운 인간'으로 우리를 부르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존재에 참여하려고 할 때에, 주님은 공적으로 우리 삶에서 현재화되어 계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몫은 바로 '하느님의 현존연습'이 아니겠습니까?
하느님의 현존연습은 특별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임을 기억하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시도록 그분의 도구가 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현존연습입니다.
하느님을 보고, 느끼고, 살아가는 일상 안에서의 체화입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 어느 그 무엇보다도 가장 특별한 은총이죠.
강론을 마치며, 특별히 오늘 복음에 '동방박사들이 보여준 모범'은 괄목할만한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상에서 오직 '별 하나'를 보고 따라갔다는 그 간절함 말입니다.
우리가 삶의 자리에서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로마 4,18),
이 동방박사들처럼 별 하나를 찾아 헤매일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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