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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는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를 기념합니다.
그래서 오늘 특별히 교회 역사 안에서 위대한 보화로 명성을 떨치신 두 성인의 말씀을 되새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두 분은 어떤 성인이었는가?'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하느님의 영에 따라 행하며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우고
또 하느님 아드님의 모상에 일치하는 사람은 영적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건전한 눈이 사물을 볼 수 있는 시력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이렇게 정화된 영혼도 성령의 능력과 활동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당신 은총의 선물을 모든 이에게 나누어 주심으로 모든 부분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에 따라 몸의 지체들을 있어야 할 곳에다 배치하셨습니다.
모든 지체들은 한 몸으로 일치시키는 그 사랑의 유대 안에서 서로서로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둡니다.
부분들이 전체 안에 있듯이 우리 각자도 성령 안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에서 한 영으로 세례 받았기 때문입니다."
- 성 대 바실리오 주교의 『성령론 』 중에서.
바실리오 성인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일상 안에 살아계신 '성령의 활동'을 느끼게 해줍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영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성령의 활동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그분께서는 영으로 활동하시며, 그 활동은 우리의 믿음 안에서 완성됩니다.
곧, '관상(觀想, contemplatio)적인 삶' ! 하느님을 믿음 안에서 발견하는 삶을 통해 우리는 그분을 우리 삶에 모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실리오 성인의 영성을, 오늘 함께 기념하는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성인은 깊게 영향을 받습니다.
"나는 나의 친구인 위대한 바실리오의 무게 있는 행동과
말하는 데 있어서의 슬기와 완숙함을 보고 그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는 서로의 친애감을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두 육신 안에 하나의 영혼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서로 안에 있고 또 서로가 함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두 사람의 유일한 과업과 갈망은 덕을 쌓고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며
현세의 삶을 떠나기 전에도 여기를 떠나간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목적하는 이상이었습니다."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의 강론에서.
두 성인은 '육'이 아닌 '영'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계십니다.
그것은 '육적인 나 중심'이 아닌 '완전한 영이신 하느님 중심의 삶'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오늘 복음의 요한 세례자처럼,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7)는 겸손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신앙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삶의 중심에 누구를, 무엇을 두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화두입니다.
'하느님!' 그 분을 모실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영원한 생명에 이를 것이고,
참 자유와 해방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