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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 헤로데는 아주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헤로데는 크게 화를 내고서, 베들레헴과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메시아로 오셨다는 아기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서 실시된 헤로데의 폭력적인 대응입니다.
'모조리 죽여 버렸다.' 저는 이 표현을 읽을 때마다 소름이 끼쳐요.
얼마나 비인간적인 잔혹함을 안고 있었으면 복음사가가 이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권력과 탐욕을 방해할 것 같은 메시아 예수님의 탄생을 뿌리채 뽑아 버리려 했던 헤로데의 극적인 처방이었습니다.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을 보세요. 말이나 되는 상황입니까?
폭력과 잔인성은 인간의 역사에서 쉬지 않고 이어져 온 한 부분입니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폭력을 행사하고, 그 폭력에 당하는 피해자도 있어 왔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인간의 가치가 파괴된 시대입니다.
낙태와 기아, 전쟁, 심지어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인간의 아름다운 '성'마저도 도구화되어
성매매를 비롯한 각종 성을 사고파는 행위가 우리 삶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인간의 탐욕과 쾌락을 위해서 다른 인간이 도구화되는 처참한 시대입니다.
참으로 통탄할 만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집중해야 할 포인트는 예수님의 방법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와 같은 방식으로 폭력에 대응하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예수님의 방식은 '비폭력'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바로 비폭력을 보여주는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라, 십자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
우리가 성 금요일에 십자가 경배를 하며 부르는 성가입니다.
교우 여러분! 비폭력에 우리의 구원이 달려있다는 사실을 필히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폭력과 잔인함에 맞서
예수님처럼 비폭력의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구원'이 달려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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