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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오늘은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요한은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신학교 시절, 많은 교수 신부님께서 '우리는 예수님의 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팬은 누군가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제자는 스승을 본받아 그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어떻게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가 될 수 있을까?'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요한 20,4)
이 말씀에서 묘사된 '다른 제자'는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요한 사도'입니다.
요한이 온 힘을 다해 예수님이 사라진 무덤에 뛰어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주셨던 예수님 그분을 찾기 위한 발버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정말 사랑하던 그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없어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뛰고 만사를 제쳐두고서라도 그를 찾아 떠날 것입니다.
복음사가는 그렇게 달려간 요한이, '보고 믿었다'며 요한의 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보고 믿었다!"(요한 20,8)
요한은 무엇을 보고 믿었다는 말입니까?
살아생전 스승님께서 제자들을 교육하실 때 했던 말씀,
'사람의 아들은 고난을 받고 죽음에 이르지만, 결국 세상을 이기고 다시 태어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그 말씀을
오늘 빈무덤 사건을 보고서야 믿었다는 것이 아닐까 묵상해 봅니다.
요한 사도는 자신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믿게 된 것입니다.
물론 스승님의 죽음은 이렇게 비참한 십자가상 죽음이었지만 결코 죽음에서 멈추는 단절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랑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도록 하는 그런 사랑입니다.
요한 사도는 바로 오늘 빈무덤 사건에서 그 사랑을 절실히 체험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완성 영원한 사랑을 '보고 믿은 것'입니다.
바로 이 목소리를 들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우리는 때로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그분께 등을 돌리는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인간적 나약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점은 예수님께서는 우리 일상의 삶에 함께 하고 계시면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잊지 말아야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에 대한 기억만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이 아닐까 묵상해 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자는 스승을 따라 본받는 사람입니다.
이 미사중에 제자됨의 겸손을 청하며,
우리를 당신의 품 안에 안아주시려는 예수님의 달달한 사랑고백으로 오늘 강론을 마치고자 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9-13 참조)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이 진실된 사랑 고백을 통해
오늘까지도 우리에게 기억되는 하느님의 사도로 거듭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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