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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교황권고] 사랑으로 이끄는 신뢰 (C’est la Confiance)1
2024-02-20 23:49:06
황문영루카 (bh801203) 조회수 229

아기 예수와 성면(聖面)의 성녀 데레사 탄생 150주년을 맞아

하느님의 자비하신 사랑에의 신뢰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교황 권고

 

사랑으로 이끄는 신뢰

(C’est la Confiance )

 

1. “C’est la confiance et rien que la confiance qui doit nous conduire à l’Amour.” “우리를 사랑으로 이끄는 것은 신뢰, 오직 신뢰뿐입니다.” 1)

 

2. 아기 예수와 성면의 성녀 데레사의 깊은 울림을 주는 이 말씀으로 모든 것이 설명됩니다. 이 말씀은 데레사 성녀의 영성의 진수를 종합하며, 교회 학자 칭호가 성녀에게 얼마나 합당한지 입증하는 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베푸는 사랑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은 신뢰, ‘오직 신뢰뿐’입니다. 신뢰를 통해 은총의 샘이 우리 삶에 넘쳐흐르고, 복음이 우리 안에 모습을 갖추어 우리가 우리의 형제자매에게 자비의 통로가 되게 합니다.

 

3. 우리를 날마다 지탱해 주는 것도, 주님께서 부르시는 날 우리가 주님 앞에 굳건히 설 수 있게 하는 것도 신뢰입니다. “주님, 이 삶이 저물 무렵에 저는 빈손으로 당신 앞에 나타나겠습니다. 당신께 제 공로를 헤아려 달라고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온갖 의로움도 당신 눈에는 모자랍니다. 바라옵건대, 그때는 제게 당신의 고유한 의로움을 입혀 주시고 당신 사랑으로 제가 당신의 영원한 소유를 받게 하소서.” 2)

 

4. 데레사 성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제일 사랑받는 성인 가운데 한 명입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성녀도 비그리스도인들과 비신자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또한 데레사 성녀는 현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의 한 사람으로 유네스코(UNESCO)의 공인을 받았습니다. 3) 알랑송에서 1873년 1월 2일에 태어난 데레사 성녀의 탄생 150주년과 시복4)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성녀의 메시지를 우리가 더욱 깊이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권고를 성녀의 탄생일이나 시복일 또는 전례적 기념일에 발표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데레사 성녀의 이 메시지가 그러한 거행 차원을 넘어 교회의 영적 보고의 일부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교황 권고를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기념일에 발표함으로써, 이 위대한 스페인 성녀의 영성과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이 무르익어 아기 예수와 성면의 성녀 데레사로 열매를 맺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5. 데레사 성녀의 지상 삶은 짧았습니다. 그저 스물네 해의 지극히 평범한 생애의 전반부는 가정에서, 후반부는 리지외의 가르멜 수도원에서 보냈습니다. 데레사 성녀에게서 나온 빛과 사랑의 특별한 힘은 선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녀의 저술이 출판되고 성녀의 전구를 청한 신자들이 얻은 무수한 은총 덕분에 잘 알려졌습니다.  

 

6. 교회는 데레사 성녀의 증언이 지니는 특별한 의의와 그 복음 영성의 독창성을 신속하게 인정하였습니다. 그녀는 1887년 로마를 순례하던 중에 레오 13세 교황 성하를 만나, 열다섯 살의 나이에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할 수 있도록 허가를 청하였습니다. 그녀의 선종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성 비오 10세 교황께서는 그 영성의 위대함을 깨닫고 현대의 위대한 성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의 덕행을 칭송하며 그러한 덕행이 영적 어린이의 길인 그녀의 ‘작은 길’로 구현되었음을 보신 베네딕토 15세 교황께서 1921년에 데레사를 가경자로 선포하셨습니다. 5) 그녀는 100년 전 시복되었고 비오 11세 교황에 의하여 1925년 5월 17일에 시성되었습니다. 6) 또한 1927년, 비오 11세 교황께서는 데레사 성녀를 선교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하셨습니다. 7) 1944년에는 가경자 비오 12세 교황께서 데레사 성녀를 프랑스의 공동 수호 성인으로 선포하셨습니다. 8)  교황께서는 영적 어린이라는 주제에 관하여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9)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자신이 데레사 성녀의 선종일인 1897년 9월 30일에 세례받았다는 사실을 즐겨 회상하셨고 성녀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바이외와 리지외의 교구장 주교에게 성녀의 가르침에 관한 서한을 보내셨습니다. 10) 1980년 6월 2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첫 번째 프랑스 사도 방문 때에 데레사 성녀에게 봉헌된 대성전을 찾아가셨고 1997년에는 데레사 성녀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셨습니다. 11) 또한 데레사 성녀에게 “사랑의 학문(scientia amoris)의 전문가” 12) 칭호를 수여하셨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데레사 성녀의 “사랑의 학문”을 다시 주제로 삼으시어 이를 “모든 이 특히 하느님 백성 안에서 신학자 직분을 수행하는 이들을 위한 길잡이” 13)로 제시하셨습니다. 마침내 2015년, 저는 가정에 관한 세계주교시노드를 개최하면서 데레사 성녀의 부모님인 루이와 젤리를 시성하는 기쁨을 누렸고, 더 최근에는 사도적 열정에 관한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의 일부를 데레사 성녀 이야기에 할애하였습니다. 14)

 

 

1. 다른 이들을 위한 예수님

 

7. 데레사가 택한 수도명에서 예수님이 뚜렷이 보입니다. 곧 강생의 신비를 드러내시는 ‘아기’ 그리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온전히 바치신 그리스도의 얼굴인 ‘성면’(聖面)의 예수님이 보입니다. 그녀는 ‘아기 예수와 성면의 성녀 데레사’입니다. 

 

8. 예수님의 이름은 애덕송이 되어 숨을 다하는 순간까지 데레사 성녀의 입술에 머물렀습니다. “예수님은 제 유일한 사랑이십니다.” 이는 그녀가 자기 방 안에도 적어 놓은 말씀입니다. 이는 신약성경의 정점을 이루는 선포인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8.16)에 대한 데레사 성녀의 해석이었습니다. 

 

선교 영혼

9. 그리스도와의 모든 참 만남이 그러하듯 이러한 신앙 체험이 그녀를 선교로 불렀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자신의 선교를 다음과 같은 말로 정의하였습니다. “제가 지금 이 지상에서 바라는 것을 하늘 나라에서도 똑같이 바랄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또 예수님께서 사랑받으시게 하는 것입니다.” 15) 그녀는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16) 가르멜 수도회에 들어갔다고 적었습니다. 한마디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일과 형제자매들의 선익 추구를 따로 떼어 놓고 바라보지 않은 것입니다. 그녀는 죄지은 아들을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하신 사랑과, 길을 잃고 헤매며 상처 입은 양 떼를 향한 착한 목자의 사랑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데레사 성녀는 선교의 수호자이며 복음화의 모범입니다.

 

10. 『한 영혼의 이야기』(l’Histoire d’une âme) 17) 끝부분은 하나의 선교 증언입니다. 이는, 복음화가 압박이나 개종 강요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끌림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데레사 성녀의 이해를 드러냅니다. 18) 이 점에서 데레사 성녀의 말씀 그대로를 읽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를 이끄소서, 저희는 당신의 향유 내음을 따라 달리리다.’ 오 예수님, 그러니까 ‘저를 이끄시면서, 제가 사랑하는 영혼들도 이끌어 주소서!’ 하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를 이끄소서.’ 이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주님, 한 영혼이 당신의 향유 내음에 사로잡히게 되면 혼자만 내달을 수 없고, 그가 사랑하는 모든 영혼도 뒤따라간다는 것을 저는 깨닫나이다. 그것은 억지로 애써서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이끌림의 자연적인 결과입니다. 급류가 바다로 나가며 만나는 모든 것을 휩쓸어 가는 것같이, 오 예수님, 당신 사랑의 가없는 대양에 잠기는 영혼도 자기의 모든 보화를 이끌어 갑니다. 주님, 제게 있어서 보화라고 하는 것은 당신께서 즐겨 제게 결합시켜 주신 영혼들밖에 없다는 것을 당신께서는 아시나이다.” 19)

 

11. 이 구절에서 데레사는 신부가 신랑에게 바치는 아가서 말씀(아가 1,3-4)을 인용하며, 가르멜 수도회의 두 학자,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의 심오한 해석을 따릅니다. 신랑은 당신의 강생을 통하여 우리 인류를 당신과 결합시키시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성자 예수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꿰찔린 옆구리에서 당신의 사랑하는 신부인 교회를 낳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셨습니다(에페 5,25 참조). 죽음이 다가왔음을 안 데레사 성녀가 자신 안에 갇혀 그저 위로의 의미로만 이 신비를 살아간 것이 아니라 열렬한 사도 정신으로 살아냈다는 사실이 감동적입니다.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게 하는 은총

12. 데레사 성녀가 성령의 활동이라고 말할 때도 우리는 바로 선교적 색채를 띠는 비슷한 그 무엇을 보게 됩니다. “제 기도는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예수님께, 당신 사랑의 불꽃 속으로 저를 끌어당기시고, 당신께서 제 안에서 살고 행동하시도록 저를 당신께 굳게 결합시켜 주시기를 청합니다. 사랑의 불이 제 마음속에서 불타오르면 타오를수록 더 ‘저를 이끄소서.’ 하고 말할 것이고, (하느님의 불가마를 멀어지면 쓸모없는 하찮은 쇳조각에 불과한) 제게 가까이 오는 영혼들도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사랑하는 이의 향유 내음을 따라 빨리 달리리라.’ 생각합니다.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영혼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으니까요.” 20)

 

13. 데레사의 마음에서 세례의 은총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대양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수많은 형제자매를 함께 이끌어 들이는 이처럼 세찬 급류가 되었습니다. 특히 데레사 성녀가 선종한 뒤에 이 일은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성녀가 약속한 “장미의 소나기” 21)였습니다.

 

2. 신뢰와 사랑의 작은 길

 

14. 하느님 백성 전체를 위한 데레사의 가장 중요한 통찰 가운데 하나는 신뢰와 사랑의 길인 ‘작은 길’입니다. 이는 영적 어린이의 길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나이나 생활 신분이 어떠하든지 모든 이가 이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작은 이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는 길입니다(마태 11,25 참조). 

 

15. 데레사 성녀는 『한 영혼의 이야기』22)에서 어떻게 그 작은 길을 찾았는지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아무리 작더라도 저는 성덕을 욕심낼 수 있습니다. 제가 더 커지기란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저는 결점투성이인 있는 그대로의 저 자신을 견뎌 내야 합니다. 그러나 아주 곧고 완전히 새로운 지름길인 작은 길로 해서 천국에 올라가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습니다.” 23)

 

16. 데레사는 그러한 길을 설명하고자 승강기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 오 예수님, 저를 분명 하늘까지 들어 올려 줄 승강기는 당신의 두 팔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커질 필요가 전혀 없을뿐더러, 오히려 작은 채로 있어야 하고, 더욱더 작아져야만 합니다.” 24)

 자기 자신은 믿을 수 없지만 주님 두 팔의 사랑의 권능 안에서 굳게 안심하는 작음입니다. 

 

17. 이것이 예수님께서 작고 가난한 이들 곧 모든 이에게 마련해 주시는 ‘달콤한 사랑의 길’, 25) 바로 참행복의 길입니다. 인간의 노력을 그 무엇보다 강조하는, 개인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며, 신비적이기보다는 금욕적인 펠라지우스주의의 성덕에 대한 관념 앞에서 26) 데레사 성녀는 언제나 하느님의 활동과 은총이 먼저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늘 큰 성녀가 되겠다는 한결같이 대담한 자신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아무 공로도 없으니까, 제 공로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오직 덕과 거룩함 자체이신 하느님께 신뢰를 두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께서 제 약한 노력에 만족하시어 저를 당신에게까지 끌어 올리시고 저를 당신의 가없는 공로로 덮어 주셔서 성녀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27)

 

모든 공로를 넘어

18. 이러한 사고방식은 은총의 증가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 결코 반대되지 않습니다. 곧, 우리가 성화 은총을 통하여 무상으로 의롭게 될 때 변화되어 우리의 선행으로 성덕을 쌓는 길에 협력할 수 있다는 가르침과 반대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러한 ‘올라감’을 통하여 우리가 받은 은총이 펼치는 힘으로 참 공로를 이룰 수 있습니다. 

 

19. 데레사 성녀는 하느님 행동의 우선성을 강조하고자 하였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남김없이 쏟아부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관상하면서 전적인 신뢰를 지니라고 격려합니다. 데레사 성녀의 가르침의 핵심에는, 우리가 자기 자신을 확신할 수 없기에 28) 우리의 공로도 확신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교리서는, 데레사 성녀가 주님께 드린 “저는 빈손으로 주님 앞에 서겠습니다.” 29)라는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성인들은 늘 그들의 공로가 순수한 은총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30)

라는 점을 보여 주려 하였습니다. 이러한 신뢰에서 기쁘고 온유한 감사가 솟아납니다. 

 

20.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온 마음 다하여 신뢰하여야 마땅합니다. 31) 이러한 까닭에, 데레사 성녀는 그 당시 흔한 표현인 “저는 성녀가 될 것입니다.”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21. 그러나 데레사 성녀의 무한한 신뢰는 나약하고 한계를 지닌 죄인이라고 느끼는 모든 이가 더 높은 데에 다다르도록 들어 올려지고 변화되도록 북돋아 줍니다. “모든 영혼 가운데 가장 작은 영혼인 당신의 어린 데레사가 느끼는 것을 약하고 불완전한 모든 영혼이 느낀다면, 사랑의 산봉우리를 올라가지 못하겠다고 낙망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슨 위대한 행동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고, 다만 내어 맡김과 감사를 요구하실 뿐이니까요.” 32)

 

22. 하느님의 주도(主導)에 관한 데레사 성녀의 이러한 강조는, 성체성사를 예로 든다면,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받아 모시려는 성녀 자신의 원의를 앞장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께서 몸소 우리와 결합하시고 또 우리 마음 안에 사시고자 하는 그 바람을 우선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33) 데레사 성녀는 날마다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면서 ‘자비로우신 하느님 사랑에 바치는 봉헌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께 “감실 안에 계신 것 같이 제 안에 머물러 계시옵소서.” 34)하고 기도드립니다. 데레사 성녀는 마냥 자기 자신이나 자기 필요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시고 찾으시며 바라시고 영 안에 머무르시는 분이신 그리스도께 늘 눈을 맞추었습니다. 

 

날마다 내려놓기

23. 데레사 성녀가 북돋는 신뢰는 개인의 성화와 구원에만 관계된다고 이해하여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신뢰는 통합적 의미를 지닙니다. 구체적 존재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고, 두려움, 인간적 안전을 향한 갈망,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욕구에 종종 사로잡히는 우리 삶 전체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내려놓음’으로의 데레사 성녀의 초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기에서 알게 됩니다. 

 

24. 사랑이신 분 안에서 내려놓게 되는 전적인 신뢰는 강박적 계산, 미래에 대한 끝없는 걱정, 평화를 앗아가는 두려움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줍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데레사는 이렇게 강조하였습니다. “사랑의 길을 달려가는 우리는 앞날에 생길 수 있는 고통을 생각하지 말아야 해요. 그것은 신뢰가 부족한 것이니까요.” 35) 무한한 사랑을 베푸시는 아버지의 손안에 있다면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그처럼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과 충만을 위한 그분의 계획은 우리 삶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성취될 것입니다. 

 

한밤중에도 타오르는 불꽃

25. 데레사 성녀는 어두운 밤에 특히 골고타의 어둠 속에서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신앙 체험을 했습니다. 데레사 성녀의 증언이 정점에 도달한 것은 생애 마지막 몇 달 동안 겪은 크나큰 “신앙의 시련” 36) 때입니다. 그 시련은 1896년 부활 대축일에 시작되었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이를 설명하면서, 37) 이 시험기를 무신론이라는 당시의 고통스러운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관 짓습니다. 19세기 말엽은 철학과 이념 체계가 된 근대 무신론의 ‘황금기’였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짙은 어둠의 공격을 당하도록” 38)

 예수님께서 허락하셨노라고 썼던 때에 데레사 성녀는 무신론의 어둠과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거부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수난의 잔을 받아들이시며 세상 모든 죄의 어둠을 몸소 짊어지신 예수님과 이루는 일치 안에서, 데레사 성녀는 그 어둠에 깔린 절망과 전적인 공허의 의미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39)

 

26. 그러나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빛으로 세상에 오신 그 한 분(요한 12,46 참조)께 사로잡혔습니다. 40) 데레사 성녀의 설명은 그녀가 지닌 신앙의 영웅적 특징과, 가장 큰 유혹과 맞선 영적 싸움에서 그녀가 거둔 승리를 드러냅니다. 데레사 성녀는 죄인들과 한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처럼(마태 9,10-13 참조) 자신은 무신론자들과 한 식탁에 앉은 자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녀는 주님과 끊임없는 사랑의 친교를 맺으면서 자기 나름의 신앙 기도를 늘 새롭게 하는 한편 무신론자들을 위한 전구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저는 저의 예수님께 달려가서, 천국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도 흘릴 각오를 하고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그 아름다운 천국을 불쌍한 무신론자들에게 영원무궁세에 열어 주시도록 하려면, 이 땅에서 그 아름다운 천국을 누리지 못하더라도 저는 행복하다고 여쭙습니다.” 41) 

 

27. 데레사 성녀는 믿음은 물론이거니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대한 깊고 무한한 신뢰, 곧 “우리를 사랑으로 이끄는 신뢰” 42)

를 체험하였습니다. 어둠 속에서조차, 엄마 아빠의 품에서 두려움 없는 안식처를 찾은 어린아이의 전적인 신뢰를 체험한 것입니다. 데레사 성녀에게,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는 그 무엇보다 당신의 자비를 통하여 드러나시는 분입니다. 자비는 그분에 대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그분께서는 저에게 당신의 무한한 자비를 베풀어 주셨고, 저는 그 자비를 통하여 하느님의 또 다른 완덕들을 관상하고 경배합니다! 이 모든 완덕들이 전부 사랑으로 다시 빛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분의 정의도 제게는 (아마도 다른 어떤 것보다 더더욱) 사랑을 입고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43) 이것이 데레사 성녀의 가장 숭고한 통찰, 하느님 백성 전체에게 해 준 주요한 기여 가운데 하나입니다. 데레사 성녀는 특별한 방식으로 하느님 자비의 깊이를 증명하였고, 거기에서 끝없는 희망의 빛을 이끌어 냈습니다.

 

가장 굳센 희망

28. 가르멜 수도회에 들어가기 전에 데레사 성녀는 가장 불행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세 건의 살인을 저지르고도 뉘우치지 않은 범죄자인 사형수 앙리 프란치니에게 깊은 영적 친밀감을 느꼈습니다. 자서전 유고 A, 45v°-46v°, 143-145면 참조.

 그를 위하여 미사를 봉헌하고 그의 구원을 위하여 완전한 믿음으로 기도를 드림으로써 자신이 그를 예수님의 성혈로 더욱더 가까이 이끌어 간다고 확신하였습니다. 데레사는, “그가 어떤 회개의 징표도 보이지 않은 채 사형장으로 간다고 할지라도” 마지막 순간 하느님께서 그를 용서하시리라 확신한다는 사실을 하느님께 여쭈었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그 확신의 이유를 이렇게 단언하였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자비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있었습니다.” 45) 프란치니가 교수대에 올라 “갑자기 어떤 감도를 느껴 몸을 돌리고는, 사제가 자신에게 들어 보여 주는 십자가상을 붙잡고 성흔에 세 번 입을 맞추었다!” 46)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데레사 성녀가 얼마나 감격했을까요. 모든 희망을 거슬러 희망하는 이 강렬한 체험이 데레사 성녀에게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 특별한 은총을 겪은 뒤에,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저의 바람은 날마다 자라납니다.” 47)

 

29. 데레사 성녀는 죄의 비극적 현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만,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도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라는 확신으로 변함없이 그리스도의 신비에 깊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세상의 죄는 크지만 무한하지 않은 반면에 구세주의 자비하신 사랑은 참으로 끝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모든 악의 세력에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신다는 사실을 데레사 성녀는 증언합니다. 데레사 성녀는 신뢰로 충만하여 담대히 설명하였습니다. “예수님, 제가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게 허락하소서. 오늘 어떤 영혼도 잃지 않게 하소서! …… 예수님, 제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더라도 부디 저를 용서하소서. 저는 당신께 기쁨을 드리고 당신을 위로하기만을 바라나이다.” 48) 이로써 우리는 아기 예수와 성면의 성녀 데레사의 메시지라는 이 참신한 바람이 지닌 또 다른 측면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3.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30. 믿음과 희망보다 ‘더 큰’ 사랑은 결코 스러지지 않을 것입니다(1코린 13,8-13 참조). 애덕은 성령께서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며 ‘모든 덕의 어머니이자 뿌리’ 49)입니다.

 

사랑에 대한 개인적인 태도로서 애덕

31. 『한 영혼의 이야기』는 애덕에 대한 증언입니다. 데레사는 이 이야기에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라는 예수님의 새로운 계명에 관한 해석을 제시합니다. 50) 예수님께서는 당신 사랑에 대한 이러한 응답을 갈망하십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마실 물을 좀 청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목마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말씀하셨을 때, 우주의 창조주께서 청하신 것은 당신의 가련한 피조물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랑에 목마르셨습니다.” 51) 데레사는 예수님의 사랑에 응답하고 그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그분께 사랑을 드리기를 원하였습니다. 52) 

 

32. 혼인적 사랑의 상징은 신랑과 신부의 상호적 자기 증여를 강조합니다. 이에 데레사는 아가서(2,16)에서 영감을 받아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신랑의 마음이 오직 저의 것이듯 제 마음도 오직 제 신랑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얼굴을 마주하고 그분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다리면서 지금 고독 안에서 저는 마음과 마음의 이 기쁜 교감에 대해 그분께 이야기합니다.” 53) 주님께서는 우리를 한 백성으로서 함께 사랑하시지만, 이와 동시에 애덕은 ‘마음과 마음’이라는 가장 개인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33. 데레사는, 예수님께서 당신 수난 때에 그녀 자신을 사랑하셨고 자신을 개인적으로 알고 계셨다는 완전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사랑하시고 저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갈라 2,20 참조). 그녀는 극도의 고통 중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께서는 저를 보셨습니다.” 54) 그녀는 같은 방식으로 어머니의 품에 계신 아기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께서는 마리아를 어루만지던 당신의 자그마한 손으로 세상을 지키셨고 세상에 생명을 주셨으며 저를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55) 『한 영혼의 이야기』의 첫머리에서 데레사는 온 인류를 향한, 그리고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각 개인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하였습니다. 56)

 

34. 데레사에게 숨 쉬듯 자연스러워진, “예수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사랑의 기도는 그녀가 복음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그녀는 그 사랑으로 그리스도 삶의 모든 신비에 몰두하여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그 시대의 사람이 되어 마리아와 요셉, 마리아 막달레나와 사도들과 함께 복음 안에 머물렀습니다. 그녀는 그들과 함께 예수 성심의 사랑에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막달레나가 수많은 손님 앞으로 걸어 나와 처음으로 만져본 사랑하는 스승님의 발을 눈물로 씻겨 드리는 것을 보았을 때 저는, 그녀의 마음이 예수 성심의 사랑과 자비의 심연을 이해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비록 죄인일지라도 이 사랑의 성심은 그녀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신성한 친밀함의 축복을 아낌없이 베풀어 그녀를 관상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끌어 올리고자 하였습니다.” 57)

 

최고의 단순함 안에 가장 위대한 사랑

35. 데레사는 『한 영혼의 이야기』의 끝에 ‘자비로우신 하느님 사랑에 바치는 봉헌 기도’를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58)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긴 그녀는 흘러넘치는 생명의 물을 고요히 드러나지 않게 받았습니다. “은총의 강이, 아니 은총의 대양이 내 영혼에 넘쳐흘렀습니다.” 59) 이는 그 어떠한 놀라운 현상이 없더라도 모든 신자에게 일상적인 사랑의 체험으로 주어지는 신비적 삶입니다. 

 

36. 데레사는 작은 일 안에서, 일상생활의 가장 단순한 일들 안에서 애덕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주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것’임을 그녀에게 가르쳐 주신 동정녀 마리아와 함께 이를 실천하였습니다. 60) 당시 설교자들은 흔히 성모 마리아를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분으로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그분의 위대함을 찬양하였는데, 데레사는 복음을 기반으로 마리아께서 가장 작은 이(마태 18,4 참조), 곧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계셨던 분이셨기에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위대한 분이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눈에 띄고 놀라운 업적이 외경(外經)에 가득하다면, 복음서는 단순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비천하고 가난한 삶을 보여 준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마리아가 단순한 믿음으로 당신을 찾는 영혼의 본보기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61) 마리아께서는 순수한 믿음과 겸손으로 ‘작은 길’을 체험한 첫 번째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므로 데레사는 주저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어머니, 

당신께서는 나자렛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시며 

가난하게 사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어떤 희열도 기적도 황홀도 

당신의 삶을 치장하지 않습니다. 뽑힌 이들의 모후시여! ……

세상에 작은 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들의 눈은 두려움 없이 당신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비할 데 없는 어머니, 

당신께서는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고자 

이 평범한 길로 걸어가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62)

 

37. 데레사는 몸이 아프고 다소 성미가 급한 수녀를 동반하였을 때 갑자기 얻게 된 깨달음처럼 일상생활의 단순함 속에서 경험한 은총의 어떤 순간들에 대하여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더욱 강렬한 애덕에 대한 이러한 경험은 가장 평범한 길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느 겨울밤, 여느 때와 같이 저는 소소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춥고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갑자기 멀리서 조화로운 악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환히 밝혀진 응접실을 그려 보았습니다. 그 응접실은 휘황찬란하게 금박으로 장식되어 있고 우아하게 차려입은 젊은 여인들이 함께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 온갖 찬사와 세상사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제 눈길은 제가 돌보고 있는 가엾은 환자에게로 갔습니다. 아름다운 선율 대신에 이따금 그녀의 앓는 소리만 들렸고, 화려한 금빛 장식 대신에 희미한 빛 속에 거의 보이지 않는 우리의 엄숙한 수도회 벽돌들만 보였습니다. 저는 제 영혼에 일어난 일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 잔치의 어두운 광휘를 능가하는 진리의 빛으로 제 영혼을 밝혀 주셨기에 저는 믿기 어려울 만큼 행복하였다는 것입니다. 아! 저는 초라한 애덕의 소임을 수행하는 데 쓰인 저의 10분을 세상 잔치들을 천 년 동안 즐기는 것과 바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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