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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고해성사 -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은총의 성사! 참으로 기쁘지 아니한가? | 박윤흡 | 10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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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 은총의 가시적 표지'입니다. 사순시기를 기다리며, 특별히 '고해성사의 기쁨'에 대해 나누어볼까 합니다. 이 글은 저의 은사 신부님이신 신학교 교수 '한민택 바오로 신부님'의 저서 '내맡기는 용기'(한민택, 생활성서사, 2018)를 참조하였습니다.
1. 고해성사에 대한 편견 "고해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고해소는 종종 단죄받는 장소로 여겨집니다. 고해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 때문에 사람들은 고해성사로부터 멀어지고 심지어 신앙까지 등집니다. 고해성사, 꼭 해야 하나요?"(p.61)
2. 오해에서 생긴 거부감 "고해성사는 우리가 저지른 죄로 인해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진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키며 죄로 인해 받은 상처를 치유해 줍니다. 그런데 왜 고해성사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까요? 많은 사람들이 고해성사를 더러운 죄를 씻어 버리는 정도로 이해합니다. 이와 같은 막연한 오해로 인해 하느님은 근엄한 분이며 우리를 단죄하는 무서운 심판관이라는 그릇된 생각으로 치닫게 됩니다."(p.62)
3. 하느님은 죄인도 사랑하실까? "고해성사에 대한 그릇된 생각 중 하나는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만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복음 말씀에 반대됩니다. '예수님' 그분이 보여주신 하느님은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며, 자녀가 잘못을 뉘우치고 되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자비로운 아버지이십니다."(p.63)
4. 고해성사의 출발점 "많은 사람들은 고해성사를 준비하면서 죄의 목록을 작성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하느님의 사랑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만이 우리 눈울 밝혀 주어 죄가 무엇이고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아볼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은 교회가 거행하는 여러 성사들, 특히 미사 때의 성찬례를 통해 잘 드러납니다."(p.64)
5. 양심성찰 방법 "하느님의 사랑만이 죄를 밝게 드러내는 이유는, 죄의 본질이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p.64-65) 따라서, "성찰을 할 때 세 가지를 살펴볼 수 있는데 하느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나 자신과의 관계가 그것입니다."(p.65)
6. 고해성사를 보는 법 1) 성찰 고해성사를 준비하며 하느님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하느님과 교회 그리고 이웃들에게 지은 죄를 성찰합니다. 2) 통회 내가 죄를 지으면서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던 점, 나의 죄로 하느님 사랑을 배반한 점을 겸손된 마음으로 후회합니다. 3) 결심 다시는 죄를 지어 하느님 마음과 나의 영혼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것들을 결심합니다. 4) 기도 가톨릭 기도서에 나온 '고백기도'와 '통회기도'를 봉헌하며 하느님께 우리를 내어드립니다. 5) 고백 이후, 고해소에 들어가 고해 사제에게 알아낸 죄들을 고합니다. 6) 보속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 삶의 방식을 회복하기 위한 보속입니다. 7) 사죄 사죄경을 통해 죄를 용서받은 고해자는 밖으로 나와 성체 앞에서 기도하며 받은 보속을 봉헌합니다.
7. 고해성사로 얻어지는 것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1요한 1,8-9)
"고해성사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 기쁨과 행복 그리고 평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한 겸손된 마음을 되찾고 하느님께 나아갈 힘과 은총을 얻습니다. 무거운 짐도 덜어줄 것이며, 그리스도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영적 근육을 길러줌으로써 죄와 유혹 앞에 굳건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우리를 무거운 짐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기에 우리에게 어떠한 영적 결단과 용기를 촉구합니다."(p.68-69)
8. 고해소, 마음을 여는 공간 "고해소는 마음의 문을 여는 공간이며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공간입니다."(p.69-70)
9. 하느님과 사람의 중재자, 사제 "사제는 하느님과 사람을 이어 주는 중재자입니다. 사제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지십시오! 고해성사는 죄를 지어 부끄러운 내가 내 안에 묻혀 버린 채 자신을 짓누르며 폐쇄적으로 변해 피폐해지는 것에서 벗어나 언제나 나를 받아 주는 하느님과 교회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도록 합니다."(p.70-71)
범계 성당 공동체 교형 자매님 !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거대한 자비를 체험하고 은총의 사순시기를 거쳐 거룩한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하는 것은 어떨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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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하느님의 인격적인 자비, 사랑과 마주서다 - '고해성사' | 박윤흡 | 137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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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전교회와 더불어 특별히 우리 '범계성당 공동체'도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은총의 사순시기는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 중에 '사순'이라는 특정 시기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순시기가 은총의 시기인 이유는 우리가 보다 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의 회개를 촉구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공생활의 시작에서 예수님께서는 외치셨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땅히 진정으로 하느님 앞에 겸손되이 회개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주님께서 무상으로 주시는 '은총의 상태'에 머물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시기가 되서 보고 지나가는 수준의 고해성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입문성사인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성체성사를 통하여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치유의 성사'라고 불리는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통하여 당신의 구원 사업을 계속해나가기를 바라셨습니다. 고해성사는 치유의 성사입니다. 제가 죄를 고백하러 가는 것은 저 자신이 치유받기 위해서, 다시 말해 영혼과 마음을 치유받고 제가 잘못한 것에 대해 용서받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따뜻한 품에 안긴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한없는 자비의 품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신앙 생활의 핵심, '고해성사'에 대하여, p.96-102.
교황님의 말씀을 되새김질하는 건 우리 신앙인들의 영적 성장에 중대한 역할을 해줄 것입니다. 말씀 그대로, 고해성사는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성사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우리들의 나약함을 여과없이 고백할 때에 '하느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 하늘나라에서 잔치를 여십니다!'
"죄를 고백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죄를 고백하려고 고해소 앞 긴 줄에 서 있으면 부끄럽기도 하고 별별 생각이 다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면 우리는 해방된 사람, 당당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용서받은 사람, 깨끗한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고해성사의 아름다움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신앙 생활의 핵심, p.100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하느님 아버지가 계시는 집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두 팔을 벌리고서 우리를 향해 먼저 다가오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믿고, 그분께 의지하며 성사를 통해 새로운 삶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다가올 사순시기, 하느님의 인격적인 자비와 사랑을 체험하는 은총의 시간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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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사도신경'과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의 차이 | 박윤흡 | 101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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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과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신경이란, 신앙을 고백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교 교리를 요체로 하여 적은 공식적이고 권위있는 진술이다. 처음에는 입교(교회로 들어옴)시 행하던 간단한 신앙고백에서 시작하여, 니케아공의화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거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과 ‘사도신경’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니케아 신경’의 경우,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자와 성부와 온전히 같은 본성을 지니신 같은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신앙 고백문으로 선포한 신경이다. 또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제 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에서 채택된 신경으로 이 신경을 공의회에서 채택할 당시에는 많은 이단들이 활개를 쳐서 이에 많은 사람들이 이단 사상을 갖게 되고(이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모든 부류의 것들), 이에 대응하여 신앙의 정수를 모아 하나의 신앙 고백문의 형태로 만들고 공의회를 통해 우리의 믿음의 내용을 세상에 선포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내용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자신이 곧 그리스도교 신앙인임을 알리는 것이며, 어떠한 이단적 오류에도 빠져있지 않음을 증명하고 자신이 믿는 신앙을 재확인하는 차원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신경은 보통 주일미사와 대축일 미사 등 장엄미사를 통해 신앙을 고백하고 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데 원칙적으로 특별한 일이 없는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바쳐야 합당하다. 그러나 사목적 사유에 의하여서 사도 신경을 바쳐도 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다수 성당에서 사도신경을 사용하여 많은 신앙인들이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잘 모른다는 것! 그러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고백함으로서, 보다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이해와 신앙 고백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괄목할만하다. 그래야만 많은 신앙인들에게 깊이 있는 신앙의 진수를 알아보고 하느님 본성에 참여하고 이해하는데 그 깊이를 더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신경>
초대교회, 즉 2세기의 교회에서 정리된 세례의 믿음 고백 형식이 3세기 이래로 발전하여 사도신경의 기본이 되었다. 4세기가 되어 처음으로 사도신경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사도적 기원과 설화가 나타났다. 5세기 들어서야 현재의 형태를 갖추었으며, 10세기 완결된 형태로 오토 대제에 의해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대체하여 서방교회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골자는, 특별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그리스도 신앙을 지키고 증거하기 위하여 교회 안에서 전통적으로 지켜온 고백이 바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이다. 성부-성자-성령 하느님의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교의가 직접적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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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와 세례수 그리고 성유는 어떻게 만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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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계성당 | 38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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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성수와 세례수. 언뜻 그 물이 이 물이고 이 물이 그 물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드실 수 있습니다. 저도 이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는 '앗, 그 차이란...?' 하며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솔직히 그 둘이 헷갈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이 두 종류의 물을 축성할 때 사용하는 기도문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기도문이 다르니 분명 다른 성격의 물이 맞습니다. 전례에 입각해서 구분하자면, 성수는 "준성사"(축복, 축성, 구마 등)를 위한 것이고, 세례수는 세례"성사"를 위한 것이 됩니다.
성수는 그 사용 목적에 따라 그만큼 우리 일상에 밀접하게 놓여 있습니다. 반면에 세례수는 세례성사라는 특별한 사건을 위해서만 사용되기에 일상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수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예를 들어 보면, 성당에 들어갈 때 성수를 찍어 성호를 그으며 개인을 정화하고 축복합니다. 미사 초반에 성수를 축복하여 회중들에게 뿌림으로써 참회 예절('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성당 밖에서도 사람을 축복하거나 사물을 축복할 때, 집이나 사무실을 축복할 때 성수를 뿌립니다.
성수는 미사 때 또는 미사 외에 필요할 때마다 사제나 부제가 축복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성수를 많이 만들어 장기 보관할 때는 물의 부패를 막기 위해 소금을 넣기도 합니다.
반면에, 세례수는 세례성사에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성야 미사 중에 있는 세례예식 때 혹은 일반적인 세례성사 전에 사제는 세례수 축복 기도문을 바치며 세례수를 축복합니다. 부활성야 미사 중 세례수 축복은 특별히, 부활초를 물에 담갔다가 들어올리면서 하게 됩니다. 부활성야가 아닌 다른 때에 이뤄지는 세례수 축복은 성사 집전자가 오른손을 물에 집어넣으면서 축복합니다.
세례성사를 거행하고 세례수가 남은 경우에는 성수축복 기도문을 통해 성수로 축복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성유(축성 기름)는 일 년에 한 번씩만 만들어집니다. 언제냐 하면 해마다 부활절을 앞둔 성목요일 오전에 주교와 사제단이 모여 봉헌하는 성유 축성 미사 때입니다.
각 교구의 주교좌성당에 사제들이 모여 함께 미사 봉헌을 하고 사제로서 서원을 갱신합니다. 주교는 미사 중에 세 가지 종류의 기름을 축성하고, 사제들은 이 기름을 나누어 가지고 갑니다. 이렇게 교구 내 각 본당과 수도회 공동체로 가져간 기름은 보통 세례와 병자성사 때 사용됩니다. 여기에 덧붙여 주교는 견진과 성품(신품) 성사를 위해서도 축성기름을 씁니다.
기름은 예식을 통해 사람을 온유하게 하거나 굳세게 만드는 데 씁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기름(자동차 연료 말고)을 언제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따져 보면 기름이 우리 삶에 주는 유익함을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쳤을 때 상처 부위에 바르는 연고처럼 말입니다. 축성된 기름은 사람의 마음을 열어 하느님께 향하게 하고, 악의 유혹에 대항할 힘을 주며, 성령이 주시는 치유의 힘을 통해 건강을 청하는 행위에 사용되는 은총의 상징적 요소인 것입니다.
올리브기름을 사용하기에 향을 맡아 보면 발삼을 첨가한 크리스마 성유를 빼고는(향에 민감하지 못한 분들은 그것마저도 헷갈립니다.) 어떤 기름이 병자성유고 예비자성유인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병에 ‘O.C., S.C., O.I.’라고 써서 구분해 놓아야 합니다. 물론, 저 표시가 어떤 성유의 약자인지 기억한다는 걸 전제로 말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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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안수는 아무나 할 수 있나요?| | 범계성당 | 108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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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안수(imposition of hands)는 사람이나 사물을 축복(benetiction)할 때 취하는 행동입니다. 사람에게는 머리에 두 손을 정성껏 얹고 기도하며, 사물은 그 사물 위에 손을 얹습니다. 안수는 준성사에 포함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준성사는 성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루어질 수도 있고, 성사와 별개로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준성사의 예로는 축성, 축복, 봉헌, 구마 등이 있습니다. 준성사를 이루는 요소에는 언제나 기도가 있고, 안수, 십자성호, 성수 뿌리기 등이 동반되기도 합니다.(이에 대해서는 “축성과 축복은 같은 말인가요?”도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안수를 누가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답을 드린다면, 넓은 의미에서 안수는 모든 이가 할 수 있는 전례적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법에서는 안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단지 어떤 특정 전례 안에서 누가 안수를 할지가 정해져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좁은 의미에서는 전례에 따라 안수를 하는 이가 정해집니다. 이렇게 특정 전례에서 그렇듯 안수를 하는 사람이 정해지는 경우가 아닌 일반적 상황에서는 결국, 누구나 안수를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자면, 고해성사 마지막 부분에서 사죄경을 바칠 때 안수를 하게 됩니다.(창이 가려져 있어서 안 보인다고 해도 사제는 고백자에게 손을 뻗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사제가 안수를 하게 됩니다. 병자성사, 견진성사 등 성사를 집행하는 상황에서는 사제가 안수를 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특별히 성품성사에서는 주교의 안수를 시작으로 사제들이 성품을 받는 이들에게 안수를 하게 됩니다. 성품성사와 같이 누군가에게 직무를 수행할 권리와 능력을 주는 경우에는 주교의 안수가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품성사에서 볼 수 있는 안수를, 직무를 수행할 권리와 능력을 성령께서 주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표지로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특별히 의미를 담고 있고 그 담당자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안수는 축복에 따르는 일종의 기도자세장영ant)로서 누군가를 축복해 주고자 하는 이가 취할 수 있는 제스처입니다. 축복을 청하는 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성령께서 그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길 청하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자녀가 여행을 떠날 때 부모가 자녀들을 축복하며 안수를 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정생활과 관련된 부분들은 가족 구성원들끼리 안수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몸이 아픈 분들을 방문하여 환자분들을 위로해 주고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특히, 레지오마리애 단원분들이 병자방문을 정기적으로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분들도 경우에 따라 안수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환자의 환부 위에 손을 얹을 수도 있고, 어깨에 손을 얹어 용기를 청할 수도 있고, 머리에 손을 얹어 위로할 수도 있습니다. 정확히는 머리에 두 손을 얹는 행위를 안수라고 해야겠지만, 좀 더 응용하여 보면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기도하는 이들의 정성된 마음이겠죠. 안수는 사람이나 사물을 축복할 때 취하는 행동이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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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가톨릭은 마리아교? ... 아닙니다. / 양승국 신부 | 범계성당 | 9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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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은 마리아교?
뭘 잘 모르는 타 종교인들이 가톨릭 신자들을 향해 틈만 나면 툭툭 던지는 말이 있습니다. “가톨릭은 마리아교다!” “가톨릭은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다!” 어떤 사람은 가톨릭 신자들은 하느님을 믿고 있지만 더불어 마리아를 여신으로 신격화한다며 언성을 높입니다. ... 또 그리스도교 신자들 안에서도 성모 신심과 관련해서 책잡힐만한 행동을 하는 분들도 없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의 모든 것이신 하느님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성모님만이 신앙생활의 전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현존하시는 본당공동체는 뒷전이고 교회 인준도 받지 않은 자칭 ‘성모성지’에만 혈안이 되어 쫓아다니십니다. 정식으로 승인되지도 않은 특별한 메시지만을 신앙생활의 전부로 여기는 신자들도 없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우리를 향한 각별한 사랑은 뒷전이고 무시무시한 종말 메시지만 난무하는 서적을 성경 이상으로 끼고 다닙니다.
성모님은 하느님께로 향하는 여정의 이정표요 길이지 종착지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신앙인으로서의 성모님을 공경합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깊은 신앙과 이웃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공경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인류구원사업의 첫째가는 협력자이자 동반자로서 각별하고 헌신적이었던 성모님을 존경합니다. 더불어 교회는 성모님의 출중했던 덕행들, 예를 들면 지극한 겸손, 철저한 순종, 무한한 인내를 칭송합니다.
입니다. 만일 한 그리스도인이 지니고 있는 성모 신심이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신앙여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면 그 성모 신심은 그릇된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성모 신심이 지향해야 할 최종적인 목적지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와 하나이신 하느님 아버지라는 불변의 진리 를 간과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성모상 앞에 마련된 봉헌함에 정성껏 예물을 봉헌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온 생애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우리 안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지속적으로 ‘예!’라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예수님과 함께 갈바리아 산 십자가 밑에 끝까지 서있는 것입니다.
- 살레시오 수도회 : 양승국(스테파노)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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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새해는 1월 1일에 시작 되는데 교회에서는 대림 제 1주일에 새해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교회는 왜 다른 달력을 사용하나요? | 범계성당 | 6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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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1년을 주기로 그리스도의 구원을 신비를 기리어 은총을 받고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의 업적을 여러 항목으로 나누어 일정한 시간에 기념합니다. 이것이 규칙적으로 반복 되면서 전례력 또는 전례 주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달력인 전례력은 일반 달력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를 기념하는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부터 새로운 해를 시작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지내고 있는 전례 주년은 교회 초창기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진적으로 생성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부활 축제(사순 시기와 부활 시기) 를 해마다 지내왔고 4세기 중엽에 와서 성탄 축제(대림 시기와 성탄 시기)가 거행되었습니다. 성탄 축제는 주님 공현 대축일(예수님께서 공적으로 세상에 알려지심이란 뜻) 까지 이어지는데 유럽에서는 1월 6일에 지내고 우리나라에서는 1월 6일과 가까운 주일에 지냅니다. 그 뒤에 부활 시기와 성탄 시기에 속하지 않은 시기를 연중시기(34주간) 기타의 축제도 삽입하였습니 다. 예컨대 그리스도와 끊을 수 없이 결합 되어 있는 하느님의 모친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한 공경 축일, 순교자 축일, 성인 축일 등을 기념하는 축제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시작되고 그분의 부활로 완성되기 때문에 전례주년은 성탄과 부활을 중심으로 이루 어져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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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 위령성월 유래와 죽음에 관한 교회 가르침 | 범계성당 | 148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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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성월 유래와 죽음에 관한 교회 가르침
죽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 11월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하늘 나라에 있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성월이다. 우리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떠난 그들도 지상에 남겨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믿는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기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위령성월을 맞아 위령성월 유래와 함께 죽음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알아본다. 위령성월 유래 죽은 이를 위한 기도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구약 마카베오기에 나온다. 기원전 2세기 유다 민족 지도자인 마카베오는 전쟁터에서 죽은 유다인 장사를 지내면서 그들이 지은 죄가 용서받을 수 있도록 기도와 헌금을 바쳤다. "경건하게 잠든 이들에게는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고 내다보았으니, 참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죽은 이들을 위하여 속죄를 한 것은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2마카 12,45). 기원후 2세기께부터 죽은 이를 위한 기도가 신자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교회 초창기 로마 카타콤바(지하묘지) 안에 새겨진 기도문에는 죽은 이들이 죄를 용서받아 천상 행복에 들게 해달라는 내용이 많았다. 교회는 이러한 기도 관행을 연옥 교리를 통해 본격적으로 발전시켰다. 세상을 떠난 이들이 천국에 들기 전 자신의 죄를 깨끗이 씻는 상태를 뜻하는 연옥은 13세기 리용공의회와 15세기 피렌체공의회를 거쳐 1545년 트리엔트공의회에서 교회 공식 가르침으로 선포됐다. 한편 609년 교황 성 보니파시오 4세는 11월 1일을 모든 성인 대축일로 지정하고 교회력에 축일이 따로 없는 성인들까지 기억하도록 했다. 이후 998년 프랑스 클뤼니수도원 오딜로 원장은 모든 성일 대축일 다음날인 11월 2일을 위령의 날로 정해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했는데, 이런 관습이 보편화되면서 11월을 위령성월로 지내게 됐다. 죽음에 관한 교회 가르침 그리스도교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죽음은 이 세상 삶을 마무리하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관문이기에 적극적 자세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죽음관이다. 교회 가르침에 따르면, 세상을 떠난 인간은 △완전히 정화된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사는 천국 △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이 정화의 과정을 거치는 연옥 △ 하느님을 결정적으로 거부한 사람들이 영원한 벌을 받는 지옥 등 3가지 상황 가운데 하나에 처하게 된다. 이 같은 개별심판(사심판)에 처한 인간은 종말이 오면, 다시 말해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면 모두 부활해 최후심판(공심판)을 받는다. 이때 의인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지만 악인은 단죄를 받게 된다. 종말의 시기와 방법은 아무도 모른다. 하느님만이 아신다. 천국과 연옥, 지옥을 인간이 죽은 후에 들어가는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다. 요즘은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 따른 상태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죽음에 관한 가르침을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먼저 인간은 죽어서 하느님을 만난다.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는 것을 체험한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적나라하게 되돌아보는 것이다. 이것이 심판이다. 연옥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 하나 되기에는 부족한 인간이 생전에 죄를 지은 것이나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것을 뉘우치면서 하느님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상태다. 인간은 연옥 상태에서 자신을 정화하며 하느님과 하나 됨, 즉 천국을 갈구한다. 연옥 영혼은 최후심판 때 구원을 받는다.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바치는 기도이다. 연옥 영혼들은 지상에서 살고 있는 신자들의 기도와 미사, 선행 등으로 도움을 받는다. 이른바 통공(通功) 신앙이다. 천국은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룸으로써 누리는 충만한 기쁨의 상태다. 천국은 추상적 개념이나 하늘 위에 있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하느님과 하나 되는 인격적 관계다. 또 지금 이 순간에도 성찬례와 자선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과 하나 되어 살았던 사람이 죽는 순간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체험하는 것, 그것이 천국이다. 지옥은 하느님을 거부한 인간이 절망과 악의 나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다. 현세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옥을 체험할 수 있다. 종말은 전적으로 하느님 일이다. 종말 때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신다는 것을 믿을 뿐이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다. 그래도 죽음은 두렵고 피하고만 싶은 약한 존재가 인간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죽음을 통해 참되고 아름답고 복된 새 생명에 들어간다고 해서 죽음의 고통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간혹 예외적 경우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리스도인에게도 여전히 두렵고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이요, 고뇌일 것이다. 그리스도인도 죽음 앞에 섰을 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할 것이다. 이것은 살고 싶은 인간 본성이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결국 당신 사랑과 그 사랑이 베푸는 죄의 사함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으로 이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죽음에 대한 좋은 준비는 나날이 이 믿음을 깊이 사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님이 우리를 한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셨음을 상기하면서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하느님 사랑을 믿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죽음 준비이다." [자료출처 : 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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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우리는 왜 주일마다 미사에 참례해야 하나요? | 범계성당 | 95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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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主日), 곧 주님의 날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간 첫날로(루카24'1참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첫째가는 축일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을 하느님께 최상의 경배를 드리는 성찬례를 중심으로 무엇보다 기도로써 거룩하게 지내야 합니다.
주일은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을 기념하며,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부활로 세상이 구원되고 인류 가 새롭게 되기 시작한 날로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리는 날입니다(가톨릭 교리서 1167항 참조).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입니다(1코린 15'14참조).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불멸의 태양으로 여겨 주간 첫째 날의 명칭인 일요일(본디 태양을 숭배 하던 날)을 '주님의 날'이라고 하였고, 유다인들의 안식일(오늘날의 토요일) 다음 날인 주간 첫째 날에 함께 모여 공적 예배를 드리며 거룩하게 지냈습니다. 따라서 주일은 초대 교회 때부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 도의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으뜸의 날로 여겨 왔고,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려면 노동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정해진 것이 휴일입니다. 휴일의 첫 번째 동기는 주님을 섬기기 위한 것(미사에 참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일에 일을 해야하는 경우 토요일 저녁 미사에 참례해도 됩니다. 본디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들의 관습대로 토요일 일 몰부터 주일 일몰까지 주일의 축제를 지냈습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교회는 주일 미사만 의무 미사로 바쳤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사목적 요청에 따라 주일과 의무 축일 미사를 전날 오후 4시부터 집전 할수 있도록 규정하였습니다(「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제 74조 1-2항 참조). 따라서 토요일에 당겨 거행하는 미사도 '주일미사'입니다. 주님을 찬미하는 일은 주일만이 아니라 날마다 해야 하는 것이므로 영혼의 유익을 위해 평일 미사에도 참례하는 것이 좋습니다.
루카24장 부활하시다 1.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그 여자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2. 그런데 그들이 보니 무덤에서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3.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다. 4. 여자들이 그 일로 당황하고 있는데 눈부시게 차려 입은 남자 둘이 그들에게 나타났다. 5. 그래서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으로 숙이자 두 남자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6.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 나셨다. 그분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해 보아라. 7.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8. 그러자 여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내었다. 9. 그리고 무덤에서 돌아와 열한 제자와 그 밖의 모든 이에게 이 일을 다 알렸다. 10. 그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그리고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였다. 그들과 함께 있던 다른 여자들도 사도들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였다. 11. 사도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헛소리처럼 여겨졌다.그래서 사도들은 그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12. 그러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가서 몸을 굽혀 들여다 보았다. 그곳에는 아마포만 놓여 있었다. 그는 일어나 마음 속으로 놀라워 하며 돌아갔다.
☞ 열두 제자가 아니고 열한 제자인 이유- 토마 사도는 그곳에 함께 있지 않았다.
1코린 15,14 그리스도께서 되살아 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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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 미사 때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아멘"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범계성당 | 89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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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중 주님의 기도는 사제의 초대 말 주님의 기도, 사제가 혼자 바치는 후속 기도 신자들이 바치는 마침 영광송으로 끝을 맺습니다. 신자들이 바치는 마침 영광송은 '아멘'의 역활을 대신하기에 주님의 기도 끝에는 '아멘'을 따로하지 않습니다.(「미 사 경본 총 지침」81항「가톨릭 교회 교리서」2760항 참조)
영성체 예식은 주님의 기도로 시작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성체로 오시는 주님을 합당하게 모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백성이 함께 간청하는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청하는 '일용할 양식'은 우선 육신에 필요한 양식을 말하지만 동시에 신앙생활 에 팔요한 '성체'(하느님의 빵 요한 6,33참조)도 의미합니다. 또한 주님을 합당하게 모시려면 주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 룩해야 하기 때문에 주님께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사고 청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주님의 기도는 영성체 준비에 적합한 기 도입니다(미사 경본 총지침 81항 참조).
주님의 기도를 시작하기에 앞서 사제는 먼저 "하느님의 자녀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 아뢰오니라고 모두에게 기도를 권 고합니다. 후속 기도는 주님의기도에 나오는 마지막 청원 내용을 되풀이 하면서 공동체를 악의 힘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간 청합니다. 끝으로 모두 함께 "주님과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있나이다."라는 마침 영광송으로 주님의 기도 전체를 끝 맺습니다.
교회는 일찍이 전례 안에서 주님의 기도에 영광송을 덧붙여 기도드렸습니다. 미사 중에 대영광송 거룩하시도다 감사 기도에서도 영광송으로 기도를 끝맺는데 가장 완전한 기도인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영광송으로 응답하는 것은 가장 합당한 하느님께 드리는 흠승과 감사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그대로 이루어 지소서.'(fiat)라 는 의미인 '아멘.'대신 주님의 기도를 영광송으로 장엄하게 마치는 것입니다.♥
요한 6,33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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