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나눔게시판 > 궁금해요? (신앙생활)
| 번호 | 제목 | 이름 | 조회수 | |||
|---|---|---|---|---|---|---|
| 44 |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 "불교 사찰을 방문하거나 불상 앞에서 예를 표해도 됩니까?" [1] | 박윤흡 | 602 | |||
|
불교 사찰을 방문하거나 불상 앞에서 예를 표해도 됩니까?
"부처님 오신 날은 그리스도인들이 불자인 이웃들과 친구들을 방문하여 인사를 나눌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1997년 부처님 오신 날에 불자들에게 보내는 경축 메시지)
고요한 분위기에서 명상을 하거나, 영적인 장소에서 머물려고, 고찰에 배어 있는 우리나라 역사 전통을 체험하거나 이웃종교인들을 만나려고 사찰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가 불교 사찰을 방문할 때, 불교 신자들에 대한 애정과 법당과 불상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고자 합장이나 예를 표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가 그곳에 모셔진 불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예배해거나, 그 앞에서 복을 기원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천주교와 이웃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회 위원회 편찬, 2019, 78. |
||||||
| 43 |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을 배우자로 맞아들일 수 있습니까?" | 박윤흡 | 527 | |||
|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을 배우자로 맞아들일 수 있습니까?
하느님께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평생 공동체를 이루는 혼인을 제정하시고 이들의 결합이 완전해지도록 혼인성사를 통하여 이들을 축복하십니다. 가정은 사회의 기초이며 가장 작은 신앙 공동체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신앙을 위하여 가톨릭 신자가 가톨릭 신자와 혼인하도록 가르칩니다. 배우자가 될 사람이 가톨릭 신자가 아닐 경우, 가톨릭 신자인 배우자는 교회의 허락을 받아 가톨릭 신자가 아닌 배우자와 혼인을 하여 하느님의 축복 속에서 부부 생활과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혼인 준비 과정에서 가톨릭 신자는 신앙을 배반할 위험이 없음을 선언해야 하며, 앞으로 주어질 주녀의 세례와 신앙 교육을 교회에 약속해야 하고, 이러한 자신의 의무를 배우자에게 알려야 합니다(교회법 제1125항 1 참조). 이러한 허락 없이 이웃 종교의 신자와 혼인 생활을 하고 있는 가톨릭 신자는 이 사실을 본당 사목자에게 알리고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교회법 제1156-1165항 참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천주교와 이웃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회 위원회 편찬, 2019, 29. |
||||||
| 42 |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 "'환생'은 정말 있습니까?" | 박윤흡 | 1123 | |||
|
'환생'은 정말 있습니까?
영화와 소설에 등장하는 '환생'과 관련된 이야기는 죽음을 생물학적 단절을 넘어 새로운 생명으로 되살아나는 과정으로 이해하려는 뉴 에이지(New Age)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뉴에이지 운동은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고 사람 안에 신적인 것이 내재한다는 입장이나 만물 안에 신성이 내재해 있다는 범신론의 경향을 띠는데, 그리스도교는 예로부터 이러한 가르침을 단호히 거부해 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현대의 환생론은 불교의 윤회사상을 자의적으로 해석합니다. 불교의 윤회는 인간이 깨달음을 얻어 고통의 수레바퀴와 같은 삶과 죽음의 순환을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현대의 환생론은 오히려 끝없는 삶의 순환을 고집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환생을 믿지 않습니다. 인간은 하나뿐인 생명을 하느님에게서 선사받아 세상에 태어나고 죽음으로 지상에서의 생을 마치고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께 도달하는 여정을 걸어갑니다. 불행하게 인생을 마감한 이들을 위하여 '패자 부활전'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논리로 환생을 정당화하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자신의 힘만으로 악과 모순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진정한 구원은 공의로우신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용서와 위로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통해서만 주어집니다.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편찬, 2019, 46-47. |
||||||
| 41 |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 "부적을 몸에 지니거나 집이나 사무실에 붙여 놓아도 됩니까?" | 박윤흡 | 1475 | |||
|
부적을 몸에 지니거나 집이나 사무실에 붙여 놓아도 됩니까?
종이에 글씨, 그림, 기호 등을 그린 부적은 악귀를 쫓거나 복을 가져다준다고 여겨지는 주술 도구입니다. 일반적으로 부적은 광명을 상징하고 악귀들이 싫어한다는 황색 종이에 생명과 정화의 힘을 상징하고 악귀를 내쫓는 붉은색 글씨로 만들어집니다. 수명의 연장, 부의 성취, 자손의 번성, 출세, 가족의 안녕, 액운의 제어, 악귀의 퇴치 등 그 목적에 따라 여러 종류의 부적이 있습니다. 무속에서는 부적이 현세적인 행동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도움을 준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활동은 인간이 만든 주술적 도구에 종속될 수 없으며,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사람에게 원하시는 때에 자유로이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부적을 만들어 이를 몸에 지니거나 집이나 사무실에 붙여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무속을 따르는 이들에게 부적은 종교적 상징입니다. 부적을 미신 행위로 여겨 가족의 일원이나 동료가 집이나 사무실 벽에 붙여 놓은 부적을 떼어 버리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에 어긋나는 행위이므로 삼가야 합니다. 또한 가톨릭 신자들도 묵주나 십자가, 상본과 기적의 패 등을 액운을 막아주는 부적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기도의 도구이지, 그 자체로 효과를 발휘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편찬, 2019, 64-65. |
||||||
| 40 |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 "사주팔자는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1] | 박윤흡 | 1341 | |||
|
사주팔자는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우리 조상들은 날을 세는 데서 비롯한 십간과 달을 세는 데서 비롯한 십이지를 조합한 육십갑자를 이용하여 연월일을 표시하였습니다. 사주는 한 사람이 태어난 연, 월, 일, 시를, 팔자는 사주의 간지가 되는 여덟 글자를 가리킵니다. 본디 사주팔자는 한 사람의 생년월일을 나타내는데, 나중에 음양오행설과 만나면서 한 사람의 타고난 운명이나 인간관계 그리고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수단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여기에는 한 사람의 일생이 태어난 시간에 따라 이미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사람의 인생이 천체의 운행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입장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마치 친구를 대하시듯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그와 사귀시며 그를 부르시고 받아들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인간을 돌보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에 예속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자신의 삶을 펼치고 실현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온갖 장애를 이겨내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소명입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편찬, 2019, 46-47. |
||||||
| 39 |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 "시험이나 큰일을 앞두고 점을 보아도 됩니까?" | 박윤흡 | 656 | |||
|
시험이나 큰일을 앞두고 점을 보아도 됩니까?
우리나라 무속 전통의 점 또는 점독은 신령의 뜻이나 미래의 일을 무당의 주술이나 의식을 통하여 파악함으로써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종교 행위입니다. 오늘날에는 전통 점술 이외에 '타로'점과 같은 서양 점술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심리적 위안을 얻고 '편한 삶'을 유지하고자 점술을 이용합니다. 그렇지만 점은 미신 행위로 우리가 참 하느님께 드려야 할 예배에서 벗어납니다. 시험이나 큰일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에 점에 마음이 솔깃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은, 그 일이 자신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를 청합니다. 일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여 하느님을 원망하거나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고 그 결과를 하느님께 맡기는 이는, 설령 그 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바와 다르다고 할지라도 하느님께서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방식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신뢰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편찬, 2019.48-49. |
||||||
| 38 |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 "작명소에서 이름을 지어도 됩니까?" | 박윤흡 | 589 | |||
|
작명소에서 이름을 지어도 됩니까?
이름은 한 사람을 드러내는 중요한 표지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아이의 이름을 부모나 가족이 신중하게 짓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주팔자를 맹신하는 운명론에 빠져 작명소에서 이름을 짓는 행위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위배됩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의 이름을 지어 주신 하느님께서는 이름 자체가 아니라, 그 이름을 지닌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이름에 담긴 의미에 연연하는 것보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고 기억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편찬, 2019, 44. |
||||||
| 37 |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 "가톨릭 교회는 이웃 종교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합니까?" [2] | 박윤흡 | 418 | |||
|
가톨릭 교회는 이웃 종교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합니까?
가톨릭 교회는 이웃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의 생활 양식과 행동 방식, 계율과 교리도 진심으로 존중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인간의 실존적 종교적 물음의 근원에 계시며 인류를 이롭게 하는 모든 고귀한 생각과 활동의 원천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민족들의 역사 속에, 문화와 종교 안에 복음을 준비하시므로 가톨릭 교회는 이웃 종교인들과 대화하면서 성령의 활동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톨릭 신자들은 지혜와 사랑으로 이웃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협력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생활을 증언하는 동시에, 이웃 종교인들의 정신적 도덕적 자산과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증진해야 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편찬, 2019, 20. |
||||||
| 36 |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 "가톨릭 신자가 아닌 조상이나 가족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까?" | 박윤흡 | 721 | |||
|
가톨릭 신자가 아닌 조상이나 가족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까?
돌아가신 조상과 가족의 종교를 막론하고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부합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고인을 위해서 언제든지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기일이나 위령의 날에 고인을 기억하며 그를 위하여 위령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고인의 뜻을 존중하여 고인이 믿던 이웃 종교의 예식을 주선하고 이를 거행한 이웃 종교인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것과 지역의 풍습대로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을 정성껏 차려 제사를 지내고 성묘하는 것도 고인과의 각별한 유대를 드러냅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편찬, 2019, 37.
|
||||||
| 35 |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 "이웃종교를 믿는 가족과는 어떻게 지내야 합니까?" | missa00 | 410 | |||
|
이웃 종교를 믿는 가족과는 어떻게 지내야 합니까?
종교는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과 관련되고 개인의 근본적인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족 사이에 종교가 다를 경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많은 이들이 되도록 한 집안에서 한 종교를 믿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에, 심지어 집안의 평화를 위하여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가정의 화목은 동등한 가치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7)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다른 종교를 믿는 가족을 억지로 그리스도교 신앙에 이끌 수도 없습니다. 가톨릭 신자는 다른 믿음을 가진 가족을 언제나 깊은 애정을 가지고 대하며 그가 하느님을 받아들일 것을 희망하면서 꾸준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좋은 기회가 있을 때, 말과 모범으로 그에게 자신의 신앙을 증언해야 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편찬, 2019, 2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