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나눔게시판 > 궁금해요? (신앙생활)
| 번호 | 제목 | 이름 | 조회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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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 성사 - "성사를 거행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 박윤흡 | 3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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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는 온전한 그리스도의 행위이며 그리스도께서 집전하십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136항 참조). 그리고 성사 거행 안에 사제는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공동체를 위하여, 특별히 봉사하도록 하느님께 부름을 받아 그 직무를 수행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142항 참조). 좀 더 구체적으로 각 성사의 집전자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례성사의 정규 집전자는 주교와 신부, 부제입니다. 정규 집전자가 없거나 장애되는 경우에는 교구 직권자에게서 교리 교사 또는 이 임무가 위탁된 다른 이가, 더구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합당한 의향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든지 적법하게 세례를 줄 수 있습니다(교회법 제361조 참조). 견진성사의 정규 집전자는 주교(특별한 경우, 위임받은 신부)입니다. 보편법이나 특별한 허가로 이 특별 권한을 받은 신부도 이 성사를 유효하게 수여할 수 있습니다(교회법 제882조 참조). 성체성사의 집전자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성찬(성체)의 성사를 이룰 수 있는 유효하게 서품된 사제뿐입니다 (교회법 제900조 1항 참조). 고해성사의 집전자는 사제입니다(교회법 제965조 참조). 병자성사는 모든 사제들만이 유효하게 집전합니다(교회법 제1003조 1항 참조). 성품성사의 집전자는 축성된 주교입니다(교회법 제1012조 참조). 혼인성사는 다르성사들과는 다르게 집전자와 주례자가 다릅니다. 혼인성사의 집전자는 혼인 계약을 맺는 신랑과 신부입니다. 혼인의 주례자는 그 자리에 입회하여 혼인 당사자들의 합의와 표명을 요청하고 그것을 교회의 이름으로 접수하는 이로서 주교와 본당 신부(위임받은 신부)입니다(교회법 제1109조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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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 성사 - "교회 안에만 성사가 있나요? 교회 밖에는 성사가 없나요?" | 박윤흡 | 4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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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하나의 성사로서 자신을 하느님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도구로 내어 주시면서, 그 계속 되는 임무를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이미 나자렛에서 성장기와 공생활 중에 말씀과 행위로써 구원의 능력을 보여 주셨고, 성령을 통하여 교회에 주어질 것을 예고하고 준비하셨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115항 참조).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자신에게 주어진 구원 사업을 계속해 나아갈 임무를 받았으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신이 거행하는 전례들 중에 주님이 세우신 온전한 성사가 일곱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117항 참조). 이러한 성사들은 '교회를 통하여', '교회를 위하여' 존재한다는 두 가지 의미에서 '교회의' 성사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117.1118항 참조). 또한 성사는 '신앙을 전제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에게만 의미를 가집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신앙이 없는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성사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갈라진 형제들의 교회 안에서는 어떨까요? 동방 정교회는 일곱 성사를 모두 인정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는 성공회의 세례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합니다(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58조 참조). 그러나 우리나라 개신교에서 거행된 세례는 그 유효성이 의심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사목 지침서 제59조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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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 성사 - "성사와 개인이 드리는 기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성사 생활에 개인 기도가 꼭 필요하나요?" [2] | 박윤흡 | 5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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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는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그 머리와 결합되어 있는 공동체 전체가 거행합니다. 전례 행위는 사적 행위가 아니라 '일치의 성사'인 교회, 곧 주교 아래 질서 있게 모인 거룩한 백성인 교회 예식의 거행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140항 참조). 한편으로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들을 당신과 신비로운 만남으로도 끊임없이 부르십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591항 참조). 이런 면에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개인적 성격을 띠기도 합니다. 성사와 개인 기도와의 가장 큰 차이는 그 공동체성에 있습니다. 성사는 공동체 전체가 드리는 공적 예식의 거행을 통한 기도입니다. 물론 개인 기도는 개인적 차원에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성사와 개인 기도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성 생활은 오로지 거룩한 전례의 참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그리스도인은 공동으로 기도하도록 부름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또한 자기 골방에 들어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해야 하며, 더욱이 사도의 가르침에 따라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전례 헌장 12항). 이렇게 교회는 성사 생활과 함께 이루어지는 개인 기도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개인 기도의 원천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 교회의 전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덕과 성사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662항 참조). 개인 기도는 그가 바치는 기도를 통하여, 전례가 거행되는 동안과 그 후에 그 전례를 내면화하고 그 전례에 동화될 수 있게 해 줍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655항 참조). 그 뿐 아니라 개인 기도는 전례 생활을 통해서 다듬어지고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658항 참조). 우리의 신앙생활은 성사와 개인 기도가 조화롭게 서로를 도와주는 가운데 하느님께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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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 성사 - "때로는 성사의 의미도 모르고 필요에 따라 또는 기계적으로 성사를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성사를 받아도 괜찮은 [2] | 박윤흡 | 46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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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성사를 세우시고 그 성사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신앙 안에서 정당하게 거행된 성사는 언제나 유효한 것이며, 성사의 은총은 틀림없이 주어집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127항 참조). 그러므로 성사는 성사를 집전하는 사람이나 성사를 받는 사람의 개인적 신앙의 깊이나 도덕적 삶의 여부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서 유효합니다. 이를 '성사의 사효성'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성사에 참여하는 사제와 신자들의 마음가짐에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모든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사이기에 그 자체로 구원의 은총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또한 여기에는 '신앙 안에서'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사는 '신앙 안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에만 그 효력을 발휘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는 그 성사를 받는 사람들의 태도 또한 강조합니다. 특히 합당한 마음가짐으로 성사를 준비한 사람은 참된 결실을 얻게 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131항 참조). 이를 '성사의 인효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거룩한 전례에 참석하여, 주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지 않도록 합당한 신앙의 자세로 성사에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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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 성사 - "'성사를 보다', '성사에 참례하다', '성사를 받다'는 여러 가지 표현하는데, 어느 말이 맞나요?" | 박윤흡 | 8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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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를 보다'라고 할 때, 흔히 집전자가 성사를 거행하는 것을 그저 구경꾼처럼 지켜보는 것을 연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에는 "어떤 일을 맡아 하다, 어떤 일을 겪거나 얻어 가지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는 뜻이 있습니다. 예컨대 '일을 보다, 장을 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삼자나 방관자처럼 지켜보려는 의도로 성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면, 특히 고해성사의 경우에 '성사를 보다'라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말의 고유함을 살리는 표현입니다. '성사에 참례하다.'는 표현은 전례나 예식에 참여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서 널리 적용될 수 있습니다. '성사 예식에 참여하여 은총을 받아 누리다.'의 의미로는 '성사에 참여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사에 참여함'이라는 표현은 새 '로마 미사 경본'에도 자주 나타나는 표현입니다. 한편 '성사를 받다.'는 표현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삼가받다."는 뜻의 '배령'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직 우리 입에 익지 않아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데 다소 어색한 점은 있지만, 어느 성사에나 무리 없이 두루 적용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례를 통하여 공통된 사제 직분을 받은 모든 이는 알고서 능동적으로 성사 거행에 함께 참여하도록 요구받는다는 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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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성사 - "교회에서 성사는 몇 가지나 있나요?" | 박윤흡 | 38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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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는 모두 일곱 성사가 있습니다. 먼저 교회에 들어오려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성사(입문성사)를 베풉니다. 곧 믿음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게 하는 세례성사, 그 신앙생활을 견고하게 하는 견진성사, 성체와 성혈에서 영적 자양분을 받으며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살게 하는 성체성사입니다. 이 성사들을 입문 성사라고 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275항 참조). 또한 신앙인의 영혼과 육신을 위로하고 고쳐 주는 치유의 성사, 곧 고해성사와 병자성사가 있습니다. 고해성사는 세례를 받아 깨끗해진 뒤에 죄로써 하느님의 은총을 모욕하고 자신의 영혼을 병들게 한 행위에 대하여 용서받고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하여 다시금 새로운 힘을 얻게 하는 성사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422항 참조). 병자성사는 특별히 신체의 병고에 시달리는 이에게 힘과 위로와 용기를 주는 성사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511항 참조). 그리고 신앙인이 자신의 구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도 봉사하고 그 사명을 수행하도록 마련된 특별한 두 성사, 곧 성품성사와 혼인성사가 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534항 참조). 성품성사를 받는 이는 "하느님의 말씀과 은총으로 교회를 사목하도록"(교회 헌장 11항) 축성되고, 혼인성사를 받는 신자 부부는 그 혼인의 의무와 존엄성을 위하여 견고해지도록 축성됩니다(사목 헌장 48항 참조). 이 두 가지 성사는 친교에 봉사하는 성사라고 합니다. 이 일곱 성사들 가운데서 성체성사는 '성사 중의 성사'로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다른 모든 성사는 성체성사를 지향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211항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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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 성사 - "성당에서 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성사인데, 성사란 무엇인가요?" | 박윤흡 | 39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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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았고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었으며 그분을 만질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영혼과 육신이 치유되고 구원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이 구원의 체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려고 언어나 몸짓, 동작을 통한 표징과 상징을 필요로 합니다. 육체적이며 동시에 영적인 존재로서 인간은 물질적 표상과 상징으로 영적 실재를 표현하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이루는 관계도 마찬가집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146항 참조). 오늘날 인간 역시 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 기관을 동원하여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84, 1146-1152항 참조) 이렇게 인간이 하느님을 체험하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서는 성사를 제정하시고 사도들에게 물려주셨습니다. 성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우셨고, 그러기에 성사는 언제나 살아 계시며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오는 힘'이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 일하는 '성령의 행위'가 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114, 1116항 참조). 이러한 성사 생활의 효과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께서 신자들을 외아드님이신 구세주와 근본적으로 결합시키심으로써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성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고 가르칩니다.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편찬, 성사(신사 재교육 교리 상식2),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7, 18-19. (앞으로 '궁금해요?(신앙생활)' 게시판에는 본 교리교육자료의 내용이 업로드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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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 궁금 합니다? [2] | 김시곤 | 644 | |||
| 56 |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 "불교의 염주와 가톨릭 교회의 묵주는 무엇이 다릅니까?" | 박윤흡 | 10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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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의 묵주 기도와 불자의 염주 기도는 단순하지만 매우 심오하고 뜻깊은 기도입니다. ... 이 두 기도는 그 명상적인 성격에 힘입어 사람들에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게 하는 효과를 공통적으로 갖고있습니다"(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2003년 부처님 오신 날에 불자들에게 보내는 경축 메시지).
구슬을 실에 꿰어 만든 기도 도구는 가톨릭 교회와 불교 이외에 동방 정교회와 이슬람교에도 존재합니다. 불교의 염주는 화환, 화관, 목걸이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말라'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 전해 달라고 성모님께 청할 때 사용되는 묵주는 '장미 화관', '장미 꽃다발'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 '로사리움'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형태와 용어의 유사성 때문에 묵주가 염주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다양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각각 독자적 기도 전통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염주는 불교 신자들이 108배를 하거나 기도할 때 사용하는 기도 도구입니다. 염주는 근심이 많아서 마음을 모아 부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부처가 권한 기도 도구입니다. 구슬의 수에 따라 108주, 54주, 27주, 14주의 염주가 있습니다. 108개의 번뇌를 하나씩 없애고, 그만큼의 깨우침을 하나씩 얻는다는 뜻이 담긴 108주가 가장 많이 사용됩니다. 54주는 부처가 되기 바로 직전 단계인 보살의 부행을, 27주는 소승 불교의 위대한 수행자 27명을, 14주는 관세음보살이 14가지의 두려움을 없애 준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편찬, 2019, 7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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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 신앙인은 이민자와 난민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 박윤흡 | 46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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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를 맞은 오늘날 이주 노동자와 난민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세계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이주 노동자 문제는 이민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안에 포함됩니다. 포악한 군주의 횡포를 피하여 이집트에서 피난 생활을 한 성가정은 이주미과 난민의 전형이며 보호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창세 4,9)라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자신만을 생각하고 이웃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며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이처럼 난민과 이주민들을 대하는 '무관심의 세계화'를 비판하시며 세계적 차원의 형제애를 호소하십니다.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이주민들의 노동 가치는 국적, 종교, 인종과 무관하게 동등한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하며 그들의 '절박한 처지'가 재정적, 사회적 착취의 기회로 악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편 이주민은 그들을 받아들이는 나라의 문화유산을 존중해야 하며 그 나라 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이주민과 난민을 하느님 자녀의 품위를 타고난 인간으로 대우하도록 강조합니다. 어떤 종교에 속하든 믿는 이는 누구나 이주민과 난민 발생의 원인이 되는 빈곤과 국제적 갈등, 그리고 곤경에 놓인 이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주민과 난민 문제는 사회 통합이라는 큰 과제를 제시합니다. 이 과제를 해결하고자 한 사회에 속하는, 믿는 모든 사람의 연대와 공동의 노력이 요청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와 이웃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편찬, 2019, 158-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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