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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미사 전례] (1)누가, 누구를 만나러 미사에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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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35 |

미사, 하느님 만나 즐겁게 보내는 시간
신앙인의 반려자 ‘삼위일체 하느님’
언제 어디서나 현존 느낄 수 있지만
특별히 미사참례로 하느님과 만나
그리스도인들은 주일마다 성당에서 거행하는 미사에 참례하러 온다. 미사는 우리를 기다리고 사랑하며 행복하길 바라는 하느님과 즐겁게 지내는 시간이다. 사진은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전경.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제공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이 생기면서 동물 축복을 요청하는 신자들이 늘어났다고 신부님들이 말씀하십니다. 예전에는 인생의 ‘반려자’(伴侶者), 사전적 의미로는 ‘짝이 되는 동무’라고 하여 부부가 서로에게 하는 애정 어린 표현이었지만, 이제는 사람보다는 함께 사는 동물들에게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반려자’는 누구인가요? 특히 믿음의 차원에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아닐까 합니다. 이승뿐만 아니라 저승까지도 함께 하는 생명의 반려자는 하느님이시겠지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그분을 만나러 적어도 주일마다 성당에서 거행하는 미사에 참석하러 옵니다.
그렇다면 세상과 자연이라는 공간과 일상이라는 시간에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을까요? 물론 언제나 그리고 어디에나 계시는 하느님은 늘 우리를 만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현존을 보다 더 잘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하느님 스스로가 정해주셨습니다.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양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아버지 하느님께 바쳐진 예수님은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마태 28,1)에 부활하여 인류의 참된 주인인 ‘주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날을 ‘주님의 날’이라는 “주일”(묵시 1,10)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인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에 따라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이 부활하신 날에 모여서 그분이 명한 예식을 행하면서 그분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을 기념하고 그분의 말씀과 행적을 알리며 그분이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도록 인도했습니다.(마태 28,20 참조)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사도 11,26)이라고 불렸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신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입문 예식, 곧 세례가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아담으로부터 이어진 원죄와 자신이 지은 본죄에서 벗어나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세례명’이라는 새 이름을 받습니다. 세례 예식을 통해 마귀를 끊어버리고 하느님을 굳게 믿겠다고 고백합니다. 교부 시대에는 마귀를 끊어버림은 서쪽을 바라보고 하며, 신앙고백은 동쪽을 바라보며 했는데, 이는 태양이 세상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흰옷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를 새옷으로 입었습니다”(갈라 3,27)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새로운 사람이 됨을 의미합니다. 파스카 초에서 세례 초에 불을 당겨서 대부모를 통하여 새 세례자에게 전해주는 것은 어두움에 빛을, 냉기가 위협하는 세상에 온기를 전해줌을 드러냅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미사에 참석하여 영원한 반려자이신 하느님과 만나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곧 미사는 우리를 기다리고 사랑하며 행복하길 바라는 하느님과 즐겁게 지내는 시간이지요.
※윤종식 신부는 1995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전례학 교수이며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윤종식 티모테오 신부
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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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웃음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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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34 |

웃음, 면역력 높여주고 암 예방 도움
힘든 인생에서 경직된 자세보다는
웃고 떠들어야 건강에도 도움돼
사람의 얼굴 표정은 그 사람의 내장 상태와 같아서 웃지 않고 찡그리고 사는 사람들은 속병이 많다고 합니다. 반면 웃음이 많은 사람들은 건강하다고 옛 어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웃음이 건강과 직결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 대왕은 잠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앓던 병도 낫고 속에 걱정이 있으면 뼈도 마른다.” 솔로몬 대왕 말처럼 의기소침한 삶이 우리 뼈까지 마르게 하고 마음을 사막처럼 황폐하게 한다면 배꼽 빠지게 웃어서라도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것입니다.
웃음은 호흡을 빠르게 해주고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생기게 하며 면역력을 높여주고 스트레스는 줄여준다는 것은 이미 의학계에서는 알려진 사실입니다.
특히 일본 의사 이타미 니로 박사는 웃음의 중요성을 설파한 사람입니다. 그의 실험관찰에 의하면 환자들이 자주 웃으면 체내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나 활기차게 변해간다고 합니다. 특히 이상 세포, 즉 암세포를 공격하는 NK(Natural Killer Cell)세포가 활성화 된다고 합니다. 이타미 니로 박사는 20~62세 남녀 19명을 대상으로 희극을 관람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희극 관람 후 NK세포가 정상치에 가깝게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웃음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요즘 코로나19 보다 더 큰 공포심을 안겨주는 것은 암에 대한 공포증입니다. 어느 방송을 보나 암에 대한 이야기가 질리도록 나오니 무의식적으로 암에 대한 공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암에 대한 공포증 때문에 효과도 보장되지 않는 여러 처방을 따르다가 부작용을 갖는 사례들도 적지 않습니다. 웃음은 비용도 부작용도 없는 가장 강력한 암 예방수단입니다.
병원에 우울한 할머니 한 분이 입원하셨습니다. 식사도 거부하시고 하루종일 병상에서 우울한 얼굴로 지내시는 분인데 유머 넘치는 원목신부가 방문했습니다.
신부는 쳐다보지도 않는 할머니의 병상 사진을 보고는 지나가는 말로 “어? 할머니 처녀 때 엄청 미인이어서~ 할머니 때문에 상사병 걸려 죽은 총각들이 수두룩했겠어요~”하곤 휙 뒤도 안 돌아보고 다른 병상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신부가 간 뒤 할머니가 거울을 보시고는 희미하게 웃으시더니 식사를 하겠다고 하시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험한 인생길에서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삽니다. 이런 때 경직된 기도나 명상은 그리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이런 때는 무조건 어린아이들처럼 떠들고 놀면서 웃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신나게 웃고 떠들 때는 동심으로 돌아가 마음과 몸이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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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미소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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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35 |

미소는 편안하게 줄 수 있는 사랑
사람과 사람 간 결속력 강화시켜
미소 많을수록 공동체 건강해져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가진 것도 별로 없고 바빠서 봉사도 못하는데 고민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랑 중 돈 한 푼 안 들이고 아주 편하게 줄 수 있는 사랑은 미소입니다. 미소는 참으로 사람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편안하게 해 줍니다.
‘미소’ 그러면 대부분 모나리자의 미소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모나리자의 미소보다 더 신비한 미소는 성모님의 미소라고 합니다.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사람들에 의하면 성모님 미소는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미소는 참으로 신비합니다. 여행 중 낯선 길을 가다가 마주친 사람이 보여 주는 미소는 피곤함을 덜어 주고 마음을 즐겁게 해 줍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미소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미소는 인간 진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미소가 사람들 간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비언어적 방법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미소 짓는 사람을 만나면 경계심과 적대감을 갖지 않고 긴장을 풀고 편안해 합니다. 적개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징표 중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미소란 것입니다. 그래서 미소를 감정적인 ‘하이잭’(hijack, 본래 의미는 ‘납치’)이라고도 합니다. 특정 상황의 분위기를 다른 방향으로 바꾸는 힘을 갖는다는 것이지요.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주 미소 지으며 이 미소가 사람들을 한배에 탄 듯한 느낌을 갖게 해 줍니다. 공동체가 어떤 상태인가 하는 것은 그 공동체 사람들이 얼마나 미소를 잘 짓는가로 알 수 있다는 것은 허언이 아닙니다. 공동체원 간 미소가 많으면 건강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 공동체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본당 신부님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으면 본당에 신자들이 늘 머물고 기도합니다. 본당 신부님이 인상 쓰고 짜증이 많으면 그 본당은 사막처럼 돼 버립니다. 미소의 힘은 그만큼 대단합니다.
몇 년 전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을 때 일입니다. 일정에 쫓겨 미사 할 성당에 좀 늦게 도착했는데 그곳 관리인이 온갖 인상을 다 쓰며 자기나라 말로 무언가 계속 중얼거렸습니다. 심지어 방문한 사람들을 향해 타박을 주는 듯한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인상 쓴 입에서 나오는 말의 발음이 욕 비슷해 기분이 아주 상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나오는데 따라 나오면서 또 자기나라 말로 욕하는 것 같았습니다. 화가 났지만 한국 신부로서 체면이 있는지라 환하게 미소 지으며 우리말로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잘 있어라 자식아! 얼굴 펴고 살아라! 우거지야!’라고. 근데 그 말을 알아들은 듯 인상을 더 쓰고 화를 내더군요. 아무리 미소를 지어도 욕은 알아듣나 봅니다.
그런데 러시아에는 미소가 통하지 않습니다. 미소 지으며 다가오는 사람들은 사기꾼이라고 한다니 러시아에서는 미소를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미소는 만국 공통어이니 마음껏 미소 지으며 사시길 바랍니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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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웃음과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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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14 |

웃음 인색하고 엄숙한 우리 교회
가까이 다가서기 힘든 모습보다는
신자들 함께하는 분위기 만들어야
우리 교회는 웃음에 아주 인색합니다. 성당에서 신자들이 웃고 떠들면 야단치는 신부님들이 적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 보기 부끄럽지 않느냐고 난리치는 진상 신부님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신부님들은 본인도 웃지 않고 늘 근엄하다 못해 우거지상을 하고 다닙니다.
이런 신부님들이 사목하는 성당은 이상하게도 공통점을 갖습니다. 성당 안이 영안실처럼 어둡고 썰렁하고 신자들은 마치 초상집 강아지들처럼 우울해 보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되지 아니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처럼 생기발랄하지 않은 사람들은 주님께서도 지겨워하신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엄숙하다 못해 신경증적인 면모까지 보입니다. 주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사는 것입니다. 웃음이 영성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하면 보수적인 분들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 하고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웃음은 영성과 깊은 함수관계를 갖습니다.
웃음이 적으면 학식이나 지위가 높아도 영성은 바닥이고 웃음이 많을수록 영성이 깊습니다. 웃음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마치 메마른 사막처럼 황폐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삭막한 곳에 사람들이 가지 않으려고 하듯이 아무도 다가가지 않습니다. 웃음이 많은 사람들은 굽이굽이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강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위로를 받으려고 함께 놀고 싶어 가까이하려고 합니다.
생전에 신자들을 쥐 잡듯이 잡으면서 신앙훈련(?)을 혹독하게 시킨 신부가 죽어서 천당에 입성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천당에 들어오면 성대한 환영을 받고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줄 알았는데 베드로 사도로부터 달랑 아파트 열쇠 하나만 받았을 뿐 주님은 얼굴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섭섭하다 못해 화가 난 신부가 주님 집에 항의방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 집 앞에 웬 여자들이 모여서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냐고 묻자, 여자들은 “우리는 하루 종일 주님만 바라보고 기도한 여인들인데, 이렇게 죽어서도 주님을 찾는데 주님께서 만나 주질 않으신다”고 답했습니다.
신부가 문지기인 베드로 사도에게 항의하자 베드로 사도가 그 신부의 귀를 잡아끌더니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너 같으면 하루 종일 누가 찾으면 만나 주겠냐? 그리고 너 같이 성질이 지랄 같고 웃음기 없는 놈하고 누가 놀아 주겠냐?”
코미디언 고(故) 구봉서 선생께서 그러셨지요. “웃으면 복이 온다”고요. 맞습니다. 웃으면 복과 친구와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포르투갈 파티마 성물방지기 수녀님이 기억납니다. 순례객인 우리 신자분들이 미소를 머금은 그 수녀님 곁에서 손을 잡고 떠날 줄 몰랐습니다.
웃음은 모든 이의 마음을 열어 줍니다. 웃음은 그 사람의 영성의 깊이가 어떠한지 가늠케 해 줍니다. 노상 우거지상을 하면 천당에 가서도 매일 우거짓국만 먹을 것입니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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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영성은 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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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45 |

기도 많이 하고 학식도 높은데
인성 망가진 사람들 적지 않아
유머 없고 갑질하면 영성은 바닥
오랫동안 영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주제에 매달렸습니다. 답을 찾기 위해 여러 종교인들을 만났고 여러 나라 성지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영성’ 하면 대부분 거룩한 어떤 것, 일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어떤 삶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깊은 산골이나 오지에서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나 아주 엄격한 삶을 사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그런 외양적 모습을 보여 주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는 종교인들이 적지 않게 생기는 사회적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아주 허름한 옷, 엄격한 기도생활을 보여 주면서 자신이 마치 세상 모든 것을 초월한 듯 연출하는 종교적 위선자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은 가짜 겸손, 가짜 가난 등의 가짜 영성을 가르치며 신자들의 심리적 상태를 신경증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신자들은 그들을 마치 사이비교의 교주 모시듯이 할 수밖에 없고요.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딱 꼬집어 문제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현장 상담 중에 그런 사람들에 의해 종교적 우울증이나 구원 불안증에 시달리는 등 심리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성은 인성’이라는 답을 찾았습니다.
기도는 많이 하는데, 학식도 높고 지위도 높은데 인성은 망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자신의 그런 삶을 무기로 삼아 존경을 얻으려 하면서 사람들을 정신적 노예로 만들어 착취하는 사람들, 종교적 갑질을 일삼는 사람들, 복음에 나오는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 우리 교회 안에도 존재함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신앙생활을 했어도, 아무리 높은 학식을 갖췄어도 성장과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인성이 엉망진창인 경우가 많습니다. 원만한 관계 맺기를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일컬어 ‘종교적 진상들’이라고 합니다.
사제복이나 수도자 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에게는 다가가고 싶은데 어떤 사람들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것은 바로 그들의 인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성은 인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학생 시절 지금은 공원이 된 난지도 쓰레기 하차장에서 며칠간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연탄 쓰레기 오물로 덮인 그곳에 몇 분의 수녀님들이 주민들과 더불어 살고 있었는데 그분들이 초대하셔서 차 한 잔 하게 됐습니다.
집안의 가구들, 심지어 찻잔조차도 다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 와서 깨지고 금간 것들이 대부분인데도 불구하고 수녀님들은 깔깔 웃으면서 그런 삶 안에서 행복해 하셨습니다. ‘일반사람이라면 짜증낼 터인데 참 영성이 깊은 분들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리 신부이고 수도자일지라도, 학자고 높은 지위의 사람일지라도 웃음기 없이 갑질을 일삼고 냉소적이며 유머가 없다면 그런 사람의 영성은 바닥입니다. 가까이 하면 다치기 쉬우니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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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기도와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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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13 |

기도하는 사람 건강, 연구로 입증
일본에는 명상으로 치료하기도
개인피정으로 정신건강 돌봄 권해
기도가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 ‘정말 그럴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심장병 전문의 벤슨이란 의사가 노인들을 장기간 관찰했습니다. 노인 73명을 선발해 절반은 홀로 기도하는 시간을 반드시 갖도록 했고 나머지 절반은 그냥 살던 대로 살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3년을 관찰했더니 기도와 명상을 한 노인들은 건강하게 살아 계신 데, 그렇지 않은 노인들은 1/4이 사망했습니다. 또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한 사람들은 혈압이 낮아지고 병에 대한 면역성이 생긴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수도원에서 사는 사람들이 장수하는 이유가 바로 규칙적인 기도, 식사와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이 원리를 이용해 ‘정숙치료법’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정숙과 선을 결부시켜 우울증이 심한 사람이나 불안이 심한 사람을 열흘 동안 ‘안정명상’을 하게 해서 치료를 하는 것인데,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이 좋은 효과를 봤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가 일본까지 가서 그 치료법을 받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 교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숙치료법을 사용해 왔습니다.
우리 교회 신자들이 수도원에서 피정을 하는 것이 바로 정숙치료법과 유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피정 후 정신적 건강을 얻는 분들이 많은 것은 바로 이런 의학적 효과 때문인 것입니다.
특히 수도자들이 늘 기도하는 곳에는 영적인 기운이 있어 심리적으로 허약한 사람들에게는 심리적인 보약 기능을 할 때도 있기에 정신적으로 지친 분들에게 수도원 피정을 권유하는 것입니다. 복잡한 일상을 떠나 수도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일과를 하다 보면 심리적 안정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장기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지친 분들에게 개인피정을 권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가 사람에게 좋은 이유는 무엇인가?
심리학자인 스드펠드 교수는 “사람은 홀로 있게 되면 내외부의 자극에 민감해진다. 처음에는 홀로 기도하는 것이 외롭고 힘들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기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아주 깊은 경지에서는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코로나19로 격리돼 힘든 시기에 우울감이 밀려올 때 자기만의 공간에서 기도하고 하느님이 주시는 힘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썰렁한 유머입니다. 어떤 수도자가 휴가를 얻어 시골에 내려가 원두막에서 경치 구경을 하는데 아주 예쁜 처녀가 저만치서 일하는 게 보였습니다. 마음이 동한 수도자가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 처녀가 저를 아는 척이라도 하게 해 주시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자마자 처녀가 수도자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뺨을 때렸습니다. 수도자가 놀라서 왜 이러느냐고 묻자 처녀가 “처녀 똥 싸는 거 처음 보니, 짜샤!” 하더랍니다.
기가 막힌 수도자가 주님께 볼멘 소리를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 왈 “처녀가 아는 척 하게는 해 주지 않았느냐” 하시며 발뺌하시더랍니다. 웃으면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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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걱정도 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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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30 |

걱정거리가 생기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뭘까요? 바로 걱정입니다. 그럼 걱정을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답은 ‘아니오’입니다. 그런데 왜 걱정을 할까요.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확실치 않은 것을 참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확실한 보장을 원합니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는데도 답을 구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집을 찾거나 영험하다는 종교인들에게 거액을 주고 걱정거리를 없애려고 합니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걱정하는 일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걱정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불안에 떨며 걱정을 했고 뭔가 준비를 했기에 그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생기는 것이 주술적 사고입니다.
주술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전용 점집이나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사를 일일이 묻는다고 합니다. 정치인, 기업인들 중에 심지어 신자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걱정을 그냥 두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걱정을 그냥 둔다는 것은 쓰레기를 안 치우고 방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 삶이 우유부단함으로 가득한 주차장처럼 돼 버려 이성 판단이 마비됩니다. 걱정은 처리를 해야 합니다. 단지 그 크기에 따라 처리법이 다릅니다.
작은 걱정들은 걱정을 해도 됩니다. 그러나 큰 걱정은 걱정을 하지 않아야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구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돼 있는데, 작은 걱정은 의식이 처리하지만 걱정의 사이즈가 크면 의식이 과부하가 걸려 마비상태가 됩니다. 이럴 때 무의식을 활용해야 합니다. 걱정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거리지 말고 힘을 빼야 몸이 뜨듯이 걱정도 내려놓으면 무의식이 활성화돼 답을 보여 줍니다. 기도 중에 일명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도인 ‘non doing prayer’라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냥 앉아서 하염없이 주님과 성모님을 바라보는 기도입니다. 넋 나간 듯한 이 기도가 복잡한 걱정거리의 답을 찾아 주는 가장 효과적인 기도입니다.
학교에서 퇴직하신 선생님이 나갈 때마다 성모상을 보고 집을 잘 봐 달라고 기도하고 귀가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꽃을 봉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도둑이 들어 재물을 털어 갔습니다. 너무 화가 난 선생님이 성모상에 대고 “집을 잘 봐 달라고 기도했는데 이게 뭐냐”고 노발대발했습니다. 그리고는 성모상을 다락방에 치워 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의 제자들이 소식을 듣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위로금을 드렸는데 도둑맞은 돈의 두 배가 들어왔습니다. 감동한 선생님이 감사기도 하려고 다락문을 열고 성모상을 찾는데 성모상은 없고 쪽지 하나가 달랑 놓여 있었습니다. 쪽지에는 ‘너처럼 의리 없는 사람하고는 같이 못 산다’는 성모님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힘든 시기지만 그동안 나를 돌봐 주신 성모님과의 의리를 지키며 사셔서 몇 배의 은총 받으시길 바랍니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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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믿음이 필요한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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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33 |

아무 데도 의지할 곳 없다 느낄 때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마음 필요
믿음으로 우울감·불안감 떨쳐내길
근래 ‘광장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광장공포증이란 갑자기 자신이 낯선 곳에 홀로 버려진 느낌이 들 때 발생합니다. 마치 낯선 여행지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의 그런 느낌.
심각한 불안감을 느끼는 광장공포증은 인간이 원시시대부터 무리지어 다니는 데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다른 짐승들보다 빠르지 못하고 강하지 못한 인간들은 무리 안에 있을 때 안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무리를 떠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근래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도 이런 심리적인 원인이 배경에 깔려있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고립무원(孤立無援)감,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불안감이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부추긴다는 것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장기간 격리상태가 지속되면서 심리적으로 허약한 사람들이 이런 불안충동에 더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 주고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고 해도 주님이 함께하실 것이란 믿음. 이 믿음이 죽음의 길로 가려는 사람들의 손목을 잡아 줍니다.
몇 년 전 재개발 지역에서 사목할 때, 매일 부수고 깨는 불도저 소리에 시달리고 밖을 나서면 집도 사람도 없이 쓰레기 더미만 봐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더욱이 나가라고 반 협박하는 사람들 때문에 성당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며 우울감과 불안감,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성당을 지켜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과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는 무력감으로 마음이 허물어지니 몸도 병들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서 성당에 들어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냐고요. 그러다 문득 ‘아, 그래. 이 성당이 내 것이 아니지. 주님과 성모님 것이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모님께 “나는 능력이 없으니 당신이 지켜 달라”고 기도하다가 문득 성모님 초상화로 성당을 둘러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언덕 위 흉가처럼 보이던 성당 벽에 성모님 대형초상화를 붙였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멀리서 봐도 성당처럼 보였어요. 성당에 오는 신자들도 성모님 초상화를 보고 묵주기도를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성당을 온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모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몇 년 후 충분한 보상을 받고 협상을 마무리했습니다. 만약 그때 나 혼자 뭘 해보겠다고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가끔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술에 망가져 폐인이 됐을 듯합니다. 믿음이 저를 살리고 성당을 살린 것입니다.
믿음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과 불안감을 떨치시고 좋은 일 얻으시길 기도합니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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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기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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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13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복음대로 간절히 기도하는 이는 소원 이룰 수 있어
말씀 새기고 힘찬 새해 발걸음 걸으시길
“기도하세요~”하면 대부분의 신자분들은 “당연한 소리야”하며 뜨악한 표정을 짓습니다. 심지어 “기도하면 돈이 생기나요? 밥이 생기나요?”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기도가 갖는 힘을 알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기도의 힘 첫 번째. 기도하면 소원성취가 가능합니다. 린다 번이라는 여성과학자는 우주에는 끌어당김의 법칙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 그 바람대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어머니들은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 정한수를 떠놓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가 힘이 있는지를 물질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물리학자들이 물 두 통을 놓고 한쪽은 그냥 두고 다른 한쪽은 매일 기도를 해 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달 후 수질검사를 해 보니 그냥 둔 물은 그대로인데 기도해 준 물은 수질이 약수로 변했다고 합니다. 저도 이야기를 듣고서 매일 성모님 앞에 생수를 놓고 기도하고 마시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기적수를 구하러 멀리 프랑스 루르드까지 가야 했는데 집 안에서 만들 수 있으니 너무 좋습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묻습니다. “그럼 기도로 사람도 달라지게 할 수 있나요. 아무리 말을 해도 말을 듣지 않는데요.” 당연히 사람도 바꿀 수 있습니다. 잠잘 때 기도해 주면 됩니다. 사람이 잠이 들면 의식은 잠들지만 무의식은 깨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는 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 주면 무의식이 알아듣습니다. 의식은 거부하는 힘이 강하지만 무의식은 그냥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종교인이건 아닌 사람이건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그 힘을 체험하기에 밑져야 본전인 마음으로 해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본당 신부님이 사목위원 세 사람과 뱃놀이를 하던 중 태풍을 만나 바다에서 헤매다가 간신히 무인도에 내리게 됐습니다. 사목위원들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희를 집으로 보내주신다면 앞으로 열심한 신앙인이 되겠습니다.”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세 사람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주님께서 혼자 남은 신부에게도 물으셨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주님 저는 집에 가 봐야 반겨 주는 가족도 없고 여기 혼자 있는 게 나은데 혼자 놀기는 심심하니 아까 집으로 보낸 세 사람을 다시 여기로 보내주십시오.” 했답니다. 그러자 세 사목위원들이 다시 무인도로 끌려왔다고 합니다. 본당 신부 기도의 힘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마르코복음 5장 34절 주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힘찬 새해의 발걸음 걸으시길 바랍니다.

※ 홍성남 신부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 제대 후 사제가 된 늦깎이 신부다. 불혹에 접어들어 ‘나’를 알고 싶어 가톨릭 상담심리대학원에서 영성상담심리를 전공했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홍성남 신부님의 톡쏘는 영성심리’로 활동하고 있으며 중앙일보, 가톨릭평화방송과 라디오 채널 등에서도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 「화나면 화내고 힘들 땐 쉬어」, 「착한 사람 그만두기」 등이 있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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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오경 특강 관련 질문입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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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텔 | 461 |
안녕하세요.
신앙생활과 관련된 질문은 아닌데 질문 글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이 이 곳 뿐이라서 여기에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다름이아니오라 제가 모세오경 특강을 듣고 싶은데, 토요일은 근무를 반드시해야하는 날이라서요...
혹시 유튜브에 강의를 올려주실 수 있는지요?
마침 혼자서 성서공부하던 중이었는데, 이제야 갈대바다를 건넌 초보??신자입니다.. 그래서 꼭 듣고 싶습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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