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1027 다해 연중 제30주일(하느님 앞에 겸손함이란?)
2019-10-26 21:54:23
박윤흡 조회수 827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어렸을 적 에피소드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국민학생 시절이었어요.

어머니는 저녁미사를 가셨었고, 저와 동생 둘이서 티비를 보고 있었는데 채널을 돌리다가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소동을 벌이고 있던 찰나에 어머니가 오셨고 제가 가서 어머니한테 말했어요.

  “엄마, 저는 숙제도 했고 방청소도 했고 빨래도 개어 놨어요. 근데 쟤는 아무것도 안했어요.”

그런데 동생이 이러는거에요. “엄마,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결국 어머니는 동생의 편을 드셨고 저는 회초리를 맞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비슷한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소개시켜 주십니다.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하니,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고 생각해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꼿꼿이 선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 저 형제는요, 저 자매는요 성당은 안 오고 맨날 놀러 다녀요.

또 어떤 자매는요 글쎼, 이혼했대요.

어떤 형제는 맨날 술만 마셔요. 어떻게 그렇게 맨날 술만 퍼마시는지 모르겠어요. 가정은 어떻게 하고 그런답니까?

그 집에 얘가 그렇게 말이 많은가봐요. 그 집안이 그렇다네요.

  그런데 저희 집은 나름 잘 지내요. 돈도 그럭저럭 벌고 미사도 꼬박 나갑니다. 남편 때문에 좀 힘들긴 한데 살만해요.

애들은 좋은 대학 나와서 대기업에 잘 취직했어요.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아, 그리고 간간히 티비에 나오는 그 사람 정말 마음에 안드는 데 어떻게 처리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꼿꼿이 서서 기도하던 이 사람과 다르게, 다른 한 사람은 무릎을 꿇고 말합니다.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부족하고 모자란 제게 소중한 가족을 주셨고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괜찮은 직장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받은 게 많은데 저는 자꾸만 당신을 잊고 지내는 것 같아 늘 죄송스럽습니다.

저 고해성사 보려고요. 이런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불쌍한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감사'한다는 것.

한편 두 사람의 차이점은 뭘까요? ‘하느님 앞에서의 교만과 겸손’입니다.

한 사람은 교만하며 감사하고, 한 사람은 겸손하며 감사하죠.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자기는 의롭다고 자처하는 이 사람은요,

이미 누군가를 판단하고 그 사람을 내리누르면서 내가 더 낫다고 하는 거에요.

하느님께 감사하다고는 하지만 결국 ‘내가 이렇게 이뤄냈어요!’하는 게 본심입니다.

이런 사람은 혹여나 잘못되면 다 누가 이렇게 했다고 합니까? ‘하느님 탓’합니다.

자기의 불성실, 게으름 같은 건 돌아보지 않고 하느님이 잘못했다고 해요.

사실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의롭지 않은 사람입니다.

 

  혹시 우리의 모습이 이렇다면 우리 쇄신되어야 해요.

교만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건 아주 중대한 문제입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하다 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관계 안에서 아부하거나, 손을 비비적거리는 그런 행위 따위는 결코 겸손이 아니겠지요.

여기엔 자신을 낮추는 척만 하지, 진심도 없고 의로움도 없고 뭔가를 얻어 내려는 욕심만 있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건 뒤로가서는 욕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한 삶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그 모범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느님을 믿기’,

둘째, ‘삶의 중심에 하느님을 모시기’,

셋째, ‘하느님의 뜻에 따르기’

이 세 가지를 염두에 두면, 예수님처럼 자연스럽게 무릎꿇고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느님 앞에 겸손한 사람으로 초대받고 있습니다.

겸손한 삶으로 초대하시는 하느님께 응답할 수 있는 이번 한 주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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