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528 다해 부활 제6주간 화요일(죄와 의로움은 결코 공존할 수 없습니다.)
2019-05-30 21:45:50
박윤흡 조회수 665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요한 16,8-11)

 

  본래 죄와 의로움은 반대되는 개념이기에 결코 공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이라는 인간 본성 안에서는 공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습성을 따르기도 하고, 의로움의 길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상황과 때에 따라서, 만나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지는 변덕스러움을 나 자신 안에서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의로움을 선택하려고 의지적으로 노력하고 은총을 청하며

실제로 의로운 사람이 될 때에 보람을 느끼기도 반면

가끔씩은, 아니 심지어 죄와 악습의 습성을 살아가면서도 모른 체 하고 싶어하거나

실제로 ‘이것이 죄인지도 모르는’ 무지의 죄를 범할 때도 있습니다.

 

  죄와 의로움이 공존하는 나의 내면을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마태 10,30)하시는

하느님께서 이미 다 알고 계시고 심판 날에 어떻게 하실지 기다리고 계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다름 아닌, ‘식별’입니다.

 

  견진교리를 통해 무수히 많이 말씀드린 단어는 바로 ‘식별’입니다.

옳은 것과 그릇된 것, 참과 거짓, 선습과 악습, 선과 악, 사랑과 무관심 등은 내 안에 공존할 수 있겠지만

반대되는 두 개념들은 결코 공존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자비’는 있을지언정, 하느님의 성향은 전자에 쏠려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죄와 의로움이 공존하는 우리들의 내면에 하느님께서 빛을 비추시어 식별의 은총을 주시기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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