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305 다해 연중 제8주간 화요일(tempus와 saeculum의 차이를 발견하다!)
2019-03-05 21:34:30
박윤흡 조회수 749

  어제는 아버지 신부님께 다녀왔습니다.

은퇴하신 아버지 신부님께 이것저것 많이 여쭙고 좋은 말씀도 많이 듣는 유익하고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 신부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가 없었으리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만큼 제게 아버지 신부님은 은사 이상의 존재이십니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마. 희망을 가져.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까.’

 

  사실 매 강론 때마다 제가 하는 말들이었고 성경을 읽으며, 기도를 하며 주님께서 제게 주시는 열매들입니다.

‘두려움을 넘어서는 희망.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

 

  헌데 삶의 자리에서 어려운 순간들에 부딪히게 되면 그 은총의 열매는 어디갔는지

두려움과 걱정, 근심이 마음에 자리하게 되는 건 인간의 나약함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여년을 넘게 사제로 살아내신 아버지 신부님의 말씀은 진정한 권위로 다가왔고

제게 힘과 용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여겨집니다.

 

  ‘현세에서 박해받는 이들이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현세’와 ‘내세’라는 표현이 제게 와 닿았습니다.

‘현세와 내세, 둘 사이의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라틴어 성경을 뒤적였습니다.

현세는 ‘tempore hoc’입니다. 한 마디로, ‘이 세대’라는 표현입니다.

한편, 내세는 ‘saeculo futuro’입니다. 직역하자면, ‘미래의 세대’라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tempore의 원형 ‘tempus’와 saeculo의 원형 ‘saeculum’이

둘 다 ‘세대, 시대’라는 말로 번역이 된다는 점입니다.

  다른 복음서의 내용들과 라틴어 원서들을 보니 둘 사이의 차이점은 명확했습니다.

tempus는 '물리적인 시대'를 말하고 saeculum은 '하느님의 시대'를 말할 때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물리적인 시간 Chronos와 영적인 시간 Kairos의 차이와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참고로 미사 통상문 내 마침 영광송에 등장하는 'saecula saeculorum' 이라는 표현은 '영원히' 라고 해석합니다.)

 

  이 발견으로 오늘 복음을 조명하자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물리적인 시대 안에서 박해를 받고 난황을 겪고 스트레스와 걱정, 근심으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하느님의 자비는 거기에서 막을 내리는 일시적인 자비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우리가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라도 

하느님께서는 미래에 다가올 하느님의 시대 안에서 우리를 품으시고

영원한 삶을 선사하시리라는 것을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씀이라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하느님의 품을 기억하며 매일같이 희망하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부로 연중시기는 휴식기에 들며, 내일부터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시기가 펼쳐집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 걱정과 근심이 많으셨을 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묵묵히 한걸음 내딛으실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을 희망하셨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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