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1112 다해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세 가지 이야기)
2019-11-12 17:21:11
박윤흡 조회수 995

  오늘은 복음을 묵상하면서 얻은 세 가지 열매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열매입니다.

일상 생활을 하다보면 가끔 마음이 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인간 관계’ 안에서 그런 경우가 많죠.

대부분 사례가 이것입니다. ‘나는 너한테 이렇게 해줬는데 너는 왜 나한테 안 해줘?’

부모 자식간, 부부간, 친구간에, 동료간에 수없이 많이 하는 말이죠.

  고대 시대에는 주인과 종의 관계가 뚜렷했습니다. 당연히 주인이 시키면 종은 해야만 했어요.

예수님은 오늘 이 주종관계의 경제논리를 비유로 드시며 깨달음을 부추기십니다. 저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주인은 하느님, 종은 인간이라면 과연 하느님과의 인간의 주종관계가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이 될까?’

 

  왜냐하면 사람들은 어떤 댓가를 바라고 하느님을 믿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요즘에는 직장에서 마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며 종처럼 하대하는 직장상사가 있으면 퇴사를 해버립니다.

내가 바라는 대로 해주지 않거든요. 흔히 X-세대, 밀레니얼 세대라고 하죠.

자신의 주장이 뚜렷한 젊은이들을 두고 하는 세대언어입니다. 

헌데 뭔가를 바라는 기복신앙의 문화는 세대를 초월하여 대다수 사람들에게 통용됩니다.

‘제가 이렇게 기도했으니 이것 이루게 해주세요.’

 

  과거 일방적이었던 주종관계가 무너지고 기브앤테이크 문화가 정착된 오늘날에는,

하느님이 주인이고 인간이 종이 아니라 주객이 전도되어서

인간이 주인이 되고 하느님이 종이 되어버린 현실을 가져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창조주요 생명의 주인이신 전능하신 천주 성부는 어디로 가신 것일까요?

하여, 우리는 객관적으로 나를 살펴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삶의 주인은 하느님일까? 아니면 하느님을 도구로 삼고 있는 나 자신일까?’

 

  두 번째 열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2,16)

  본래 세상의 주인이셨던 하느님께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이 세상에 오십니다.

그리고 “나를 너를 친구라고 불렀다.”(요한 15,15)하시고, 심지어 더러운 발까지 손수 닦아 주십니다.

주기보다는 받기만을 바라는 인간의 욕망을 간파하시고 직접 모든 것을 내어주는

마치 백만송이 장미와도 같은 삶을 예수님께서는 모범으로 보여주십니다.

질문이 생깁니다. ‘주종관계를 철저히 하던 고대와는 달리 하느님께서 왜 이런 선택을 하셨을까?’

 

  백문이불여일견이라.

아무리 말로써 가르친다고 하여도 한 번의 진심어린 모범이 아니고서는 올바른 길로 인간을,

또 제자들을 훈육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참 하느님이시며 참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론입니다.

문득,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님이 떠오릅니다.

 

  세 번째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성부께 충실했습니다.

또한 우리들의 어머니 성모님은 신앙의 최고 모범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 ‘하느님은 정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무자비한 주인인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강론 시간에 저는 세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백만송이 장미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론’,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하느님’

 

  종합해 보자면, 우리 자신이 진정 자발적으로 하느님의 종이 될 때에야,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위대한 구원의 역사는 막힘없이 펼쳐진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제 우리 교우분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하느님과 함께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가시겠습니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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