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1110 다해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 영적인 기쁨, 움직이는 하느님의 교회)
2019-11-09 16:23:34
박윤흡 조회수 853

  오늘 교회는 평신도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작년 11월 19일부터 작년 동월동일까지 한국 천주교회는 ‘평신도 희년’을 지냈습니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는 말씀을 바탕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평신도로서의 정체성을 성찰하고 회복하는 희년을 보낸 것입니다.

난 해 평신도 주일 강론 원고를 보니까 제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인용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성인이 되신 교종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을 펼쳐 보았습니다.

이 권고의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평신도들이 한 집단으로서든 개인으로서든

교회의 친교와 사명 안에서 받은 은사와 책임에 대한 더욱 더 깊은 의식을 일깨우고 증진시키고자 하는 것이

이 권고의 목적이다.”(평신도 그리스도인, 2항).

 

평신도는 누구인가?

  “평신도는 성품성사를 받은 이들과 교회에서 인정된 수도자 신분에 속하는 이들 이외의 모든 그리스도인을 말한다.

즉 세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 백성의 일원이 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 왕직에 참여하여

교회와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 백성 전체의 사명을

각자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수행하는 신자들을 말하는 것이다.”(평신도 그리스도인, 9항)

 

  쉽게 말해서, 복음의 정신에 맞갖게 삶을 살도록 부르심받은 존재가 바로 ‘평신도’입니다.

우리가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천주교 신자로서 기쁠 수 있는 이유를 저는 오늘 복음에서 발견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루카 20,38).

우리가 하느님의 면전 앞에 영원히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위령성월을 보내고 있기에 죽음에 대해 더 깊이 묵상하지만,

언젠가 마주 할 이 세상에서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관문일 뿐이라는 것이죠.

하느님의 면전 앞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바로 우리에게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단순히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 순간 웃고 마는 차원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기쁨이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시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기에,

이 기쁨은 ‘영원한 영적인 기쁨’인 것입니다.

 

  하여, 오늘은 두 가지만 기억하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나는 하느님의 움직이는 교회다.”

단순히 이 성당 건물 자체만이 아니라, 세례받은 우리 모두가 평신도로서 이 세상의 평화와 구원을 위하여

각자도생하는 ‘하느님의 움직이는 교회’라는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잘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단풍잎이 아름답게 물든 것처럼,

하느님의 도우심 안에서 이 세상을 사랑과 복음으로 물들게 할 수 있다면 하느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둘째, “나는 영원한 영적인 기쁨을 선물로 받았다.”

우리는 영원히 하느님 앞에 살아 있는 존재이기에 하느님 친히 베푸시는 영적인 기쁨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2독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으로 강론을 갈무리 하겠습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 주님은 성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고 여러분을 악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이끄시어 하느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이르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2테살 2,17; 3,3.5)

댓글 2개

top 뒤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