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904 다해 연중 제22주간 수요일(사제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2019-09-04 18:25:10
박윤흡 조회수 751

  이번주 저의 화두는 이 내용입니다. ‘나는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던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신부가 되었는데..

녹록치가 않다. 힘들다. 예수님은 복음을 선포하실 때 어떤 마음이셨을까?’

 

  지난 주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을 지내며

저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월요일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시어 두루마리에 적힌 이사야 예언서의 내용을 설파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화가 잔뜩 나서 들고 일어나 고을 밖으로 내몰고 벼랑까지 끌고 가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하고 성경은 전합니다.

 

  화요일 복음에는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루카 4,33)이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방해합니다. 왜 방해할까요?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해온 방식대로 살고 싶은데

예수님께서 ‘복음은 그런 삶이 아니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건 그게 아니야!’라고 하시니까 싫은 겁니다. 그래서 대꾸하죠.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루카 4,34)

  흥미롭게도 이 화요일 복음은 월요일 복음과도 연관이 됩니다.

하느님은 안중에도 없고 나만 남은 사람이 바로 예수님을 벼랑으로 끌고 갔던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사람들이죠.

 

  성경 말씀을 삶에서 녹아내려고 하기 보다는 그저 분석만 하는 사람, 이 사람은 영성 없이 지식만 가득 찬 괴물입니다.

또 하늘나라의 복음을 성찰하거나 마음 깊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사람,

하느님의 뜻은 둘째고 내가 살고 싶은 대로만 살고 싶은 사람,

그저 내가 원하는 것만 바라며 하느님을 내 삶의 도구로 치부시키는 사람,

세속적인 마인드와 방향성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봉사직을 수행하면서 봉사는 커녕 윗 자리만 차지하기를 바라는 사람,

신앙생활을 내 이익과 정치적인 득으로 생각하여 도구로 삼는 사람,

강론을 듣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 하기 보다는 그저 판단과 트집에 집중하는 사람,

성직자 수도자들과 깊은 친분관계만 잘 맺으면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기에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참 녹록치 않습니다. 제 동기 신부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신부가 세상에 대해 뭘 안다고 설쳐 대느냐’, ‘신부는 한 말을 다 잘 지키느냐’ 

‘세상물정도 모르면서 강론대에 서서 무슨 말을 짓거리고 있느냐’ ‘나이도 어린 게 어디서 감히’

물론, 신부가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 허나 인간적으로 마음이 찢어지고 통탄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신부도 나약한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10년의 수련기간 동안 신학교에 살면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적어도 세상 사람들보다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자신의 청춘과 인생을 걸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복음을 선포하라며 세상 속에서 뽑아 세우신 존재들이 사제들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루카 4,43)

 

  하느님의 뜻은 세속의 뜻과 반대되지만 너무나도 많이 세속의 것들이 이 교회 안에도 침투해 있습니다.

사제 성화 뿐 아니라 신자들의 성화를 위하여 함께 기도하고 또 성찰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제들이 이러한 세속 마귀와 악마들의 공격 속에서도

열정과 사랑으로 자신의 길을 굳건히 정진해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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