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324 다해 사순 제3주일(하느님의 현존을 기억하라!)
2019-03-20 23:18:03
박윤흡 조회수 840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루카 13,2-3)

 

  우리가 접하는 매체는 그다지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지 않습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자극적인 요소들을 찾아 방송해야 시청률이 높아진다는 생각에

되도록 흥미로운 나쁜 이야기들만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듯 생각도 해봅니다.

매체만을 세상의 전부라고 받아들이는 우리 소시민들은 안좋은 이야기들을 먹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안좋은 이야기들과 마주하면서 우리는 ‘세상이 이래서야 되겠느냐’며 한탄을 늘어놓기도 하고,

‘저 인간은 천벌을 받아도 마땅하다’며 단죄를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저 인간은 죽어야 된다’며 함께 마음속으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마음은 우리가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열망 안에서 일어나는 행동이기도 하지요.

그만큼 부도덕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헌데, 그러한 판단과 행동들이 우리 안에 쌓이게 되면

우리는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사고방식으로 가득차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도는 다르겠지만 우리는 이미 마음속에서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도 나를 돌아보면, 나 또한 일상 안에서 물리적인 행동을 취하진 않았지만

마음으로 매체에 나오는 행동들을 저지른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죠.

‘저 사람들이 죄를 많이 지었다고 생각하니? 정도는 다르겠지만 너도 다르지 않단다. 너도 회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과 단죄를 저지르는 우리에게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직접적인 당부를 하시는 듯 느껴집니다.

 

  “그들이 악을 탐냈던 것처럼 우리는 악을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투덜거린 것처럼 여러분은 투덜거리지 마십시오.

... 이 일들은 본보기로 그들에게 일어난 것인데,

세상 종말에 다다른 우리에게 경고가 되라고 기록되었습니다.”(1코린 10,6.10-11)

 

  우리가 모두 유기적인 신비체로 구성되어 있다면,

저 사람이 사는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이 다른 곳이 아니라 같은 세상이라면

이미 우리는 모두 죄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직접적인 개입을 하진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그 사람이 죄를 짓게 된 사회문화 안에 우리도 살고 있기에

우리도 그러한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죄의 늪에 빠지게 되는 건 하느님의 현존을 잊고 살아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 ‘있는 나’라는 표현은 흥미롭습니다.

말 그대로, ‘존재 그 자체’이기에 ‘현존’을 표현하는 것이죠.

‘없음’이 절대적으로 배제된 ‘완전한 있음’으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십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은총의 열매는 꽃을 피웁니다.

성모님께서 ‘은총이 가득한 이’라고 불리셨던 것은 언제나 ‘하느님의 현존’을 믿고 따랐기 때문이지요.

모든 성인 성녀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순 제3주일을 맞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상 안에서도 언제든 우리와 함께 계시는 당신의 존재를 알아달라’ 부르짖으시는 듯 느껴집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외침에 외면하지 말고

우리의 양심을 통해 말씀하시는 그분의 간절함을 듣는 거룩한 이번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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