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1118 나해 연중 제33주일(영원하신 하느님이야말로 영원한 명품이십니다.)
2018-11-17 18:28:51
박윤흡 조회수 896

  최근 언론에서 고위 공직자가 찬 시계를 두고 ‘저것이 진품이다. 가품이다.’하는 말이 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명품이니까 그랬겠죠.

억대의 값에 몇 년을 차도 시계가 잘 가면 진품이고,

시장에서 몇 만원주고 사서 며칠 차다가 멈춰버리면 가품이라는 것입니다.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을 보고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의 모습이 다를 뿐이지 그 시계를 차지 못 했다고 해서 삶의 질이나 만족도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데 어쩌면 그 저변에 깔린 건 ‘나도 명품을 갖고 싶다.’는 갈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명품 좋아하십니까?

뤼비통, 까르띠에, 고야드, 버버리, 샤넬, 피아제, 살바토레 페레가모, 프라다, 베르사체, 셀린느, 구찌 등

수많은 명품들이 있죠.

  중국 가품 시장에 가면 진품과 비슷한 농도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made in italy, made in france, swiss made로 택을 붙여서 판매하는

소위 명품st가 많이 생산된다고 하죠. 요즘엔 혼수선물로 명품백을 선물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제품의 디자인과 소재가 값을 지불하고 살만큼 훌륭하기 때문에 명품을 찾는다고는 하지만

왠지 모를 불편함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상하게 '명품은 좋은데 그게 내꺼여야 좋지, 남이 치장하고 있는걸 보면 불편하다.'는 말입니다.

왜 명품을 갖고 싶어할까? ‘그것을 하면 내가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명품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죠. 그것 때문에 발생하는 일들이 문제가 됩니다.

이 명품사업의 가장 큰 전제는 ‘인간의 욕구’를 건드린다는 것에 있습니다.

 

  인간의 욕구. ‘명품에 걸린 욕구’라고 한다면 뭐가 있을까요?

‘갖고 싶다는 욕구’,

‘자기 안에 숨겨진 열등감을 감추려는 욕구’,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욕구들이 부정적으로 들리지만, 다른 한편으로 바라본다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다양한 욕구와 갈망으로 명품을 바라지만 흥미롭게도 그것은 '영원하지 못하다'는 거에요.

예를 들어서 아주 사고 싶은 게 있어서 그걸 내 손에 넣게 되었는데,

며칠 못가서 실증이 나기도 하고 애물단지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다른 것이 더 좋아보이기도 하는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아주 일시적이죠.

 

오늘 저는 ‘명품을 사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욕구에 따라서 무언가를 갖고 싶어 한다면,

궁극적인 욕구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나는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는가?’,

‘이 세상을 떠나면 이 모든 것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

‘영원히 살 수 있는 건 없을까? 영원한 생명!’, ‘그래! 하느님!’

죽음을 두려워하는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궁극적인 욕구는 ‘영원한 생명’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마르 13,31)

사라지지 않는다는 표현은, 영원할 것이라는 약속과도 같습니다.

2독서에 바오로 사도께서도 말씀하시죠.

“그리스도께서는 ...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히브 10,12)

우리가 믿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는 죽으셨지만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영겁의 시간을 거치고 지금 이 순간까지, 앞으로 다가올 모든 순간에도

하느님 품에 영원히 살아 계시리라는 사도의 처절한 고백입니다.

 

  그런데 부활과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도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1독서에서 친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현명한 이들은 창공의 광채처럼, 많은 사람을 정의로 이끈 이들을 별처럼 영원무궁히 빛나리라.”(다니 12,3)

 

  초등부 미사가 끝나고 한 초등학생이 저한테 왔어요.

‘신부님! 저 영원한거 뭔지 알았어요!’

뭔데?’ 

‘보이지 않는 것과 아무 것도 없는 것이요. 그게 영원한 것 같아요.’

 

  실제로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어디에도 없는 분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하느님의 존재방식이에요.

우리 눈에 보이거나 우리가 더듬을 수 있는 어딘가에 계신다면 그건 하느님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영원히 계시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 방법밖엔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영적인 눈을 뜬다면

어디에서나 보이고 어디에서나 계시는 분이 바로 우리들의 영원하신 하느님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취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분은 바로 ‘영원하신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이야말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영원한 명품'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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