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1104 나해 연중 제31주일(투신적인 사랑을 살 때, 하느님의 나라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2018-11-03 22:34:00
박윤흡 조회수 807

  우리가 지금 보내고 있는 11월은

우리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모든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위령성월’입니다.

지난 2일에 본당에서는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미사’와 연도가 봉헌되었고,

같은 날 미리내 성지에서는 선종하신 교구 사제들을 위한 미사와 연도가 봉헌되었습니다.

 

  저는 저를 아껴주셨던 할머니와 학창시절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친구 2명,

또 이 사제직을 먼저 사셨던 존경하는 신부님들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교우분들 가슴에도 우리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신, 추억과 그리움으로 사무쳐있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분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얼마 전,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으면서 묵상하게 된 곡이 있습니다.

제목: ‘Media vita in morte sumus’, ‘생의 한가운데 우리는 죽음 속에 있다네.’

 

  “생의 한가운데 우리는 죽음 속에 있다네.

주님이 아니면 우리는 누구에게서 구원을 찾아야 하는가?

비록 우리가 범한 죄 때문에 노여우셔도 저희를 비참한 죽음에 빠뜨리지 마소서.”

 

  인간은 항상 죽음의 한 복판에 있으며 삶과 죽음이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의미로  이해가 됩니다.

이 위령성월 보내며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우리 삶의 자리에 함께하는 죽음을 대비하는 우리의 몫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듯 합니다.

 

  이 위령성월 첫 주를 맞아 오늘 복음은 더욱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라틴어 성경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모든 계명에서 첫째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이것이다. 너는 심장과 영혼, 정신과 용맹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너를 대하는 방식으로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 말고 다른 계명은 없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찾아보니 라틴어 ‘Diligere’ 동사를 사용합니다.

이 동사는 ‘사랑하다, 존경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 ‘사랑하다.’를 표현하는 동사로 ‘Amore’가 있는데, ‘사랑하다, 좋아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Diligere를 성경에서 찾아보니 이 부분입니다.

“Simon Ioannes, diligis me?”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5.16)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으뜸 제자인 베드로에게 던지시는 물음이죠.

‘너는 나를 위하여 온전히 너를 투신하여 나를 사랑할 수 있느냐?

너는 나를 사랑하고 존경하느냐?’하는 물음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다.’

 

  또 어디서 들어봤는고 하니, 혼인성사에도 등장합니다.

“일평생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까?”

그저 ‘사랑하고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랑하고 존경하는 ‘투신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완전한 헌신의 사랑이 바로 이 Diligere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오늘 복음으로 돌아가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 계명,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가르침에 율법학자는 ‘스승님, 맞습니다!’하며 대답하죠.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넌지시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마르 12,34)

 

  천국을 향하여 날개를 펼치는 세상을 떠난 이들과 더불어,

아직 이승에 남아 있지만 언제나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게 오늘 복음은 매우 중대한 가르침으로 다가옵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가까이 있을 수 있기 위해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하느님과 이웃에게 투신적인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우리가 너무도 많이 들어왔고 잘 알고 있는 계명이죠.

그런데 들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삶에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죽음을 기억할 때, 하느님 나라를 기억할 때 우리의 삶은 생명이 넘칩니다.

죽음을 기억할 때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음을 알고 ‘사랑만이 남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향하여 Diligere적인, 투신적인 사랑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청하며 이 미사를 봉헌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이 지향을 두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생의 한가운데 우리는 죽음 속에 있고 언젠가 다가올 훗날 천국 낙원으로 들어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 하느님 손맞잡고 단풍놀이 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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