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0909 나해 연중 제23주일
2018-09-07 00:05:50
박윤흡 조회수 693

 

  찬미 예수님! 아름다운 주일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낫게 하십니다.

하느님 말씀에 경청하지 못하고,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지 못했던 그 사람이

오늘 이 치유를 통해 하느님의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이로써 참된 치유는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세례성사 예식서를 보면, ‘에파타 예식’이 있습니다.

이 예식은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 귀를 열고 묶인 혀를 풀어주는 예식의 재현입니다.

이 예식을 하는 이유는 세례성사를 통해 새롭게 태어날 그 사람이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했던 과거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이제 세례를 통해 새로운 사람이 되는 과정에서,

지금 이 순간부터는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선포할 수 있는 능력의 은총을 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의 ‘에파타’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귀 먹었다’는 표현은 역설적으로 ‘하느님 말씀에 어두운 상태’를 말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

사막의 교부 한 분은 이런 표현을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대가 만나고자 하는 그곳에 계시면서 그대를 만나신다.’

 

어쩌면 에파타 예식은 한 시점에 일어나는 기적이 아니라,

우리가 매순간 세례성사를 기억하고 간직할 때에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기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면

언제든 하느님께서는 우리 곁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치도 우리가 심장이 없으면 숨을 쉴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장의 존재를 매순간 느끼지는 못하지만,

심장의 움직임을 알 때에 그것이 없이는 우리가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은 바로 우리의 생명을 역사하시는 심장과 같은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귀를 기울일 때는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장과 같으신 하느님!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은 무엇을 하시는가?’

 

  1독서에 이사야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이사 35,5-6)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이유는

당신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시고, 당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영적인 다리를 주시고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내가 체험한, 나를 구원하신 하느님을 선포할 수 있는 혀를 선물로 주시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죠.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위해서 끊임없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발버둥치시는

그런 하느님이심을 이사야 예언자는 선포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포인트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느 누구 하나도 제외하지 않으시고,

그렇다고 해서 A보다 B를 더 아끼지 않으시고 특별히 모두를 사랑하시며 다가오신다’는 점입니다.

한 마디로,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죠.

 

  세례성사의 ‘에파타 예식’을 통해서 우리 귀와 혀의 조타수가 하느님을 향하도록 설정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선포할 수 밖에 없는 은총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것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통해 드러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원하는 삶의 방식으로 내 삶이 변하듯이,

하느님을 만났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삶의 모습으로 우리의 삶이 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께서 먼저 보여주신 ‘모두를 사랑하는 삶’입니다.

 

  2독서의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야고 2,1)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주 쉽게 우리 마음 안에 나름의 기준을 정해놓고 사람을 차별하는 악습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 그렇게 누군가를 대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하지만 그런 삶의 패턴은 오늘 예수님의 ‘에파타’를 무시한 채,

그저 ‘귀먹고 말 더듬는 이’로 남아있으려는 우리들의 나약한 욕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에파타’예식을 통하여 우리 마음과 영혼에 불을 지르고자 하시려는 것은 바로 ‘세례성사’입니다.

유아세례건, 학창시절에 세례를 받았건, 성인이 되어 느즈막하게 세례를 받았건 그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호를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갈라 2,20)임을 기억하고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매순간마다 우리 영혼의 이목구비를 하느님께로 향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니겠습니까?

‘에파타!’

 

오늘도 쉼없이 우리를 하느님께로 향하도록 해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는 예수님의 정성을 잊지 말고, 하

느님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겸손된 은총을 청하는 오늘 거룩한 주일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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