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0717 나해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2018-07-17 22:07:31
박윤흡 조회수 769

 

 

  오늘 복음 환호송의 말씀은 개인적으로 좋아라 즐겨 부르는 환호송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퍽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수 이끄시는 양 떼로세.

  아,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시편 95(94), 7-8)

 

  우리를 이끄시는 목자 하느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우리들을 참 자유로 이끄는 방법론이라는 것을 시편 저자는 명확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양심에 찔리는 행동들’이 있어요.

쓰레기를 버린다던지, 기도 생활에 충실하지 않다던지, 남을 시기질투한다던지, 남에게 해코지를 하는 언행들,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들, 지겹고 불편한 마음과 나태함, 게을렀던 시간들,

나의 반려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다른 만남을 갖는다던지 등..

이런 행동과 생각을 할 때면 우리들의 마음은 절대 자유롭지 못합니다. 편치가 않아요.

그런데 흥미로우면서도 안타까운 사실은 끊임없이 우리는 그런 유혹에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곤 마음이 편치 않은채로 남아있습니다.

 

  교회는 우리들 영혼의 자유를 위하여 ‘고해성사’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고해성사의 결실이 ‘보속’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보속을 다 하면 죄를 용서받는다.’

하지만 이것은 고해성사에 대한 왜곡된 이해입니다.

고해성사의 핵심은 ‘고해자의 성찰과 회개’입니다.

바로 하느님께 돌아서려는 그 마음과 결단이 고해성사의 핵심이라는 것이죠!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마태 11,21.23)

 

  왜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실까요?

그들의 영혼 상태가 깨끗하지 않기에 부자유로 남아있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마태 11,20) “... 회개하였을 것이다!”(마태 11,21)

 

  우리 몸과 마음과 영혼의 과녁을 어디에 놓는가 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여기엔 우리들의 결단이 요구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참된 자유로 오늘도 부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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