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0320 나해 사순 제5주간 화요일
2018-03-19 23:10:29
박윤흡 조회수 939

 

  ‘여러분은 왜 성당에 나오셔서 가톨릭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이런 질문 받아보신 적 있으신지요?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참된 가르침’, 진리를 찾아서 쌍심지를 켜고 찾아다닙니다.

요즘처럼 영성이 메말라버린 세속적인 배금주의와 자기중심적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더욱이 종교에서 가르치는 진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인 샘물을 마련해줍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양 종교문화권은 역사적으로 ‘유,불,도교’가 뿌리내려 있습니다.

특별히 불교, 부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해주죠.

위대한 스님들의 법문은 놀랍습니다.

세계적인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은

‘아!’라는 외침과 함께 깨달음을 선물해 줍니다.

그밖에도 지구 저편에 이슬람교를 비롯한 다수의 종교들의 가르침을 보더라도

‘그래, 이런 가르침이!’하면서 ‘유레카!’가 절로 외쳐집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은 성당에 나오셔서 가톨릭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한번쯤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왜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성당에 다니는 것인가?’

 

 

 

 

 

 

 

 

  이러한 물음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질문과 같은 맥락을 취합니다.

 

 

 

 

“당신이 누구요?”(요한 8,25)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나는 위에서 왔다. ...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8,23)

 

그리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요한 8,28-29)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위에서 오신 분,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분, 그러나 이 세상에 오신 분,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명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죠.

‘당신이 누구요?’라는 질문에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신 것입니다.

 

 

 

이제 질문은 조금 더 구체화됩니다.

 

‘예수님! 당신이 이 세상에 왔다면 왜 오신 것이오?

당신을 보냈다는, 당신이 온전히 순명하여 뜻에 따른다는 그 아버지는 누굽니까?’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요한 복음사가는 분명히 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사랑하신 분이시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아들 예수를 보냈다고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1독서에 등장하는 구리뱀 이야기.

저희 얼마전에 들은 독서말씀이죠.

이스라엘 백성을 살리시기 위해 주님께서 ‘생명의 구리뱀’을 마련하셨습니다.

“사람이 구리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민수 21,9)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요한 8,28) 이 말씀은..

예수님 당신이 들어 올려 지심을 받을 터인데,

그래야만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생명의 구리뱀처럼 예수님 또한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들어 올려지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성당에 나오셔서 가톨릭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이제 우리는 대답할 수 있습니다.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영원한 삶을 믿습니다.”

 

 

  영원한 삶은..

특별히 정해져 있어서 ‘이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죠.

우리 각자가 하느님과의 돈독한 관계 안에서 발견하고 찾아내야만 하는

신앙의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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