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나눔게시판 > 복음의 기쁨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루카 15,20)
오늘 복음엔 두 아들이 등장합니다.
실제로 성경을 보면 오늘 이야기의 제목이 '두 아들의 비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두 아들이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는 것이겠지요.
저는 오늘 강론을 준비하며,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이시며,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라고 일컬어지는 조세프 라칭거 추기경님께서 쓰신 '나자렛 예수'(1,2,3)를 살펴보았습니다.
"작은 아들은 '먼 고장'으로 떠나간다.
교부들은 여기서 아버지의 세계, 곧 하느님의 세계에서 멀리 떠나가는 내먼적 멀어짐을 보았다.
관계를 단절하고 진정한 자기 본연의 것에서 떠나
스스로 저지른 소외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멀어짐이다. ...
이 비유에서 재산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낱말은 그리스 철학에서 '본질'이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탕자는 '자기의 본질', 자기 자신을 허비했다는 뜻이다."
(조세프 라칭거 추기경, 박상래 옮김, 나자렛 예수 1, 307-308, 2012)
라칭거에 의하면,
작은 아들이 방탕한 생활을 했다는 그 자체를 해석하기로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라고 합니다.
나 자신을 잃었다 함은,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과도 멀어졌다는 것을 말하겠지요.
실제로 작은 아들은 하느님과 단절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되돌아옴'이 이루어집니다.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루카 15,20)
바로 이 말씀입니다.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갔다.'
"'회개'는 그가 이 사실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소외된 존재로 여기며
정말로 '낯선 곳'으로 멀리 떠나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래서 이제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조세프 라칭거 추기경, 박상래 옮김, 나자렛 예수 1, 309, 2012)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혹자는 이 복음 말씀의 주인공을 두 아들 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참된 주인공은 다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아버지 하느님'께 유보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루카 15,20)
오늘 복음의 중심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
하느님 아버지의 끝없는, 경계없는 그 자비가.. 바로 오늘 복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죄를 짓고 사는 죄인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하느님...
우리가 그분의 구원계획에 동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삶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회개의 삶으로 하느님께 보답해 드리는 것. 바로 이것이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아닐까 묵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