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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어느 사제의 일기
2018-03-02 01:12:31
박윤흡 (missa00) 조회수 1391

 

사제의 일기

- 미쉘 콰스트 신부

 

 

주님, 오늘 밤,

저는 혼자입니다.

 

저도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저 혼자서…

 

 

성당 안의 소음도 차츰 사라지고

모두들 제각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길을 가다가

저는 놀고 있던 아이들과 마주쳤습니다.

 

주님,

그들은 절대 내 아이가 될 수 없는

남의 아이들입니다.

 

주님, 저를 보십시오.

저는 혼자입니다.

 

침묵이 저를 숨막히게 하고

고독이 저를 괴롭힙니다.

 

 

주님,

저는 다른 사람과 다름 없이 건장한 몸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건장한 몸과

누군가를 사랑하고픈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다 주님께 바쳐왔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당신은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들을

다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면서도

누구의 사랑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남을 위해서 모든 것이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혼자라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 있으면서도

혼자라는 것,

주님, 정말 어렵습니다. 

 

 

받을 생각을 않고

언제나 주기만 한다는 것

 

제 이익은 찾지 않고

언제나 남의 이익만을 찾는다는 것

 

남의 죄를 듣고

혼자 견디어 내고 이를 견디어 내는 것

 

비밀이 있으면서도

이를 어떻게든 터놓지 못한다는 것

 

언제나 남을 이끌고 가면서도

자신은 한 순간도 이끌리지 못한다는 것

 

약한 사람을 붙들어 주면서도

자신은 어느 강한 사람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는 것

 

이 모두 다 어려운 것 뿐입니다.

 

 

혼자라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 있으면서도

혼자라는 것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고통과 죽음과 죄 앞에

혼자 있는 것

 

주님, 정말 어렵습니다.

 

 

"아들아,

그래도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지 않느냐?

내가 바로 너다.

 

내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강생과 구속 사업을 이어가자면

또다른 내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너를 나로 알고

영원으로부터 뽑은 것이다.

 

나는 네가 있어야 한다.

 

 

내가 계속 축복을 주려면,

네 손이 있어야 한다.

 

내가 계속 말을 하려면,

네 입술이 있어야 한다.

 

내가 계속 고통을 받으려면,

네 몸이 있어야 한다.

 

내가 계속 사랑하려면,

네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내가 계속 구원을 주려면,

너 자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아들아,

나와 함께 있어다오."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제 몸도, 제 마음도, 제 영혼도

다 여기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이 세상 어디나 다 닿을 만큼

크게 해주시고

 

이 세상을 다 짊어질 수 있을 만큼

강하게 해주시고

 

자신을 위해서 아무것도 간직하지 않고

이 세상을 다 끌어안을 만큼

순결하게 해주소서.

 

저로 하여금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 뵙는 장소가 되어도

곧 지나쳐 버리는 곳이 되게 하소서.

 

저로 하여금

주님께로 향해 가는 길이 되게 하시고

아무것도 꺾을 것이 없는 길이 되게 하소서.

 

 

주님, 오늘 밤은 모든 것이 고요한데,

제 마음 속은

뒤끓어 몹시 고통을 느낍니다.

 

모두 제게서 영혼을 탐내고 있지만,

저는 그들 하나 하나의 굶주림을

다 풀어줄 수가 없습니다.

 

온 세상이 제 두 어깨를

비참과 죄악으로 마구 찍어 눌러도

 

저는 자조하지 않고

천천히, 똑똑히, 또 겸허하게

'그렇습니다, 주여' 하고 되풀이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 앞

혼자 있습니다.

이 밤의 평화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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