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200916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2020-09-16 07:41:40
김준형요한사도 조회수 67

매일미사 https://missa.cbck.or.kr/DailyMissa/20200916

복음말씀 http://maria.catholic.or.kr/exGB/down.asp?type=3&menu=missa_pds1&id=180276&fileid=2

유튜브 https://youtu.be/mKkWE6k4y2s

 

예수님은 참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는데 사람들이 들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부분 바로 앞에는 세례자 요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지 짧게 말씀하십니다.

듣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다는 것을 받아들였지만,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그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세대 사람들’은 바로 이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당시 풍습 중에는 혼인잔치 때는 피리를 부는 사람을 불러 흥을 돋우고, 

장례 때에는 곡하는 사람을 불러 슬픔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이었죠.

회개를 외쳐도 회개하지 않고, 기쁜 소식을 전해도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선포에도, 예수님의 선포에도 자신들의 고집을 꺾지 않았죠.

그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하니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자신들은 선택된 하느님의 백성이니 다른 것은 듣지 않겠다는 그들에겐 

아무 말도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강론을 준비하면서 이 부분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분의 답답함이 제게도 전해졌기 때문이죠.

강론을 열심히 준비해서 이렇게 올려도 이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혹이죠. 모든 것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그것을 이기고 복음을 전하셨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확신이 있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한다는 그분의 뜻에 대한 확신 말이죠.

그리고 그것을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만 그것을 독차지하는 것이아니라, 

그것을 알려줘서 모두가 그 구원의 길로 갈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사랑’을 담아서 하셨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을 향한 사랑, 그것이 그분이 지닌 힘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변하지 않는 차가운 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선포를 이어갈 수 있던 것은 그 바탕에 그들을 향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은 하느님의 나라였습니다.

세상을 위한 사랑이었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웃사랑을 가장 완전하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세리와 죄인들까지 친구로 삼으시면서요.

세례자 요한이 보여준 것은 회개의 삶이었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온전한 회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하느님사랑을 드러내는 것이죠.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히 하느님께 회개하고 의탁하는 삶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 세대 사람들’은 이것도 저것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느님사랑도 이웃사랑도 배척하고 말았죠.

자기들 나름대로의 신앙을 고수한 채 정작 아무런 변화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답답함을 이기고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삶으로 그것을 보여주셨죠.

그것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 ‘지혜의 모든 자녀’들이 그분께서 옳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것이 현대까지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이유이죠.

우리도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삶, 

세상을 넘어서는 구원을 희망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을 향한 사랑을 담아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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