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908 다해 연중 제23주일(부활을 희망합니다.)
2019-09-07 13:19:36
박윤흡 조회수 51

  예비 신학생 때 뵈었던 기억에 남는 신부님 한 분이 계십니다.

복사를 설 때 실수를 하거나 동작이 드려서 시간이 지연되면 탁 째려보시는데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서우신 분이셨어요.

어렸을 때라 강론 내용이 잘 기억에 남진 않지만,

특별히 제게 또렷하게 남는 것은 교우분들이 웃다가 또 울다가를 반복하더라는 것입니다.

항상 검은색 수단을 입고 신비로운 모습으로 비춰졌었습니다. 당시 어른들이 신부님을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포청천’

 

  명절이 되면 평소처럼 교중미사 복사를 서고서는

초등부 복사단, 예비 신학생 친구들과 함께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었습니다.

초등학생은 삼 천원, 중학생은 오 천원, 고등학생은 만 원을 쥐어주셨어요. 그리고 말씀하셨어요. “애들은 가.”

 

  그렇게 고등학생만 데리고 ‘따라와’하시더니 옷장으로 가셨는데 뜯지도 않은 쇼핑백이 많은 거에요.

그걸 한 두 개씩 주셨습니다. ‘이거는 아버지 갖다드려.’ ‘이거는 어머니꺼야’ ‘이거는 사이즈 맞으면 너가 입고’

 

  가끔 제 방을 둘러보면 그 신부님이 생각납니다.

‘나는 책도 많고 신발도 많고 옷도 많은데.. 도대체 그 신부님은 무얼 추구하면서 사셨던 것일까?’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복음서 전체 맥락에서 가장 중요한 흐름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예수님의 제자교육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자기 가족 뿐 아니라 심지어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자기 가족, 자기 목숨, 자기 소유를 다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런 문장이 됩니다.

‘내가 나 자신을 죽여야 한다.’

 

  청년들과 함께 읽고 있는 프랑수아 바리용 신부님의 ‘흔들리지 않는 신앙’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의 소명은 신화되는 것, 하느님처럼 완전하게 변모되는 것이다.

... 어떤 것에서 죽어 새로운 어떤 것으로 태어나지 않는 한 ‘변모’는 없다.

따라서 우리의 소명이 하느님화되는 것이라면, 우리의 운명은 죽음과 부활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죽음은 생애 끝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전 생애 동안 필요한 죽음, 나 스스로에 대한 죽음,

다시 말해 우리가 희생이라고 부르는 이기주의에 대한 죽음을 의미한다.

부활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삶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며, 우리는 죽어야 부활할 수 있다.”

(프랑수아 바리용, 흔들리지 않는 신앙, p.58-59 참조)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살리시던 날,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토마스가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요한 11,16) 토마스는 왜 라자로를 보고난 후에 이런 고백을 했을까요?

라자로를 보면서 토마스는 체험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신다면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부활로 넘어가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체험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 토마스가 시간이 지나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죽고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그분의 옆구리와 못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봐야 한다며 의심을 품고 또 망설였던 것은,

어쩌면 알고는 있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하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결국 토마스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마주하고서야 이렇게 고백하지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200주년 신약성서, 요한 20,28)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버려야지, 비워야지, 내가 조금 양보해야지, 내 성질을 좀 죽여야지,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지,

세속 보화가 아니라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아야지.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성전에 나와 미사를 봉헌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또 봉사를 한다는 것,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건 우리들의 스승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신 것처럼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죽음과 십자가를 받아들인다는 서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워야 부활할 수 있고, 내어주어야 부활할 수 있고, 죽어야 부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부활을 희망하며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고군분투 한다면,

종국에 하느님께서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실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33)

top 뒤로가기